[서성록씨] ''눈물젖은 빵'도 달콤해요'
기사입력 1998년 04월 29일 15시 32분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 1일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불란서식당 `쉔브룬'에서 견습 웨이터로 일하는 전 삼미그룹 부회장 서상록씨(61)가 나비 넥타이를 매고 쟁반을 든 지 한달째를 맞는 소감이다.
서씨의 근무시간은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러나 오후 1시면 일찌감치 업장에 나타난다. `협박' 편지와 전화를 위해서다.
"친구들에게 매일 20∼30통씩 편지를 보내고 10여통씩 전화를 겁니다. 한번 오라는 거죠. 10명에 1명만 와도 어딥니까?"
전화효과는 즉각적. 장인 가족은 물론 부회장 시절에 함께 일했던 여비서까지 찾아와 매상을 올려주고 갔으며 40년 지기인 최형우 의원은 지난 11일 가족의 부축을 받고 들렀다. 덕분에 업장 매출이 30% 이상 뛰어올랐다고.
오후 4시30분은 `점저'(점심+저녁) 시간. 근무시간이 끝날 때까지 음식을 입에 못대는만큼 아예 배불리 먹어둔다.
시침이 6자를 넘겨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눈코뜰새없이 바빠진다. 청소하고, 접시 닦고, 포크와 나이프를 정리하고, 빵 썰고….
자기를 만나기 위해 찾는 고객이 있을 때는 직접 서빙을 한다. 그러나 초보인데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서빙하다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다.
샤벳트를 쏟거나 맥주병을 엎지르는 것은 기본.
지난 26일에는 미국인 손님 머리위에 포도주를 부어버리기도 했다.
"외신에 난 기사를 보고 한국 출장을 나섰다가 일부러 찾았다는 말에 너무 잘하려다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며칠후면 생일인데 `깜짝파티'를 미리 치를 수 있게 해줘 고맙다"는 손님의 미국식 위트로 위기는 넘겼으나 한동안 식은땀이 흘러 혼났다고.
"몸무게가 7kg이나 빠졌습니다. 퇴근 무렵이 되면 배가 고파 손님들이 먹다 남은 빵조각을 주워먹을 때도 있어요. 들켜서 주방장에게 크게 혼이 나긴 했지만."
그룹 부회장과 웨이터를 서씨는 `새장 안의 새'와 `밖에 나온 새'에 비유한다.
"부회장 시절에는 돈꾸러 다니느라 마음 고생 많이 했는데 웨이터는 그런 짓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요. 또 예전에는 괜히 근엄하게 행동했었는데 이제는 누구에게나 가식없이 대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한달 급여는 60만원. 그러나 부회장 시절 못지않게 저축하고 산다.
"술 사라는 사람이 있나, 정치헌금 내라는 사람이 있나…. 집근처 삼성역에서 호텔옆 을지로입구역까지 왕복 전철비 900원말고는 돈 쓸 일이 없어요."
"오전시간에 특강을 해달라는 주문이 쇄도, 부수입도 쏠쏠하다"는 서씨는 "조만간 한번 들르겠다는 집사람의 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실수없이 멋지게 서빙해 남편 걱정 접을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