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오후2시] '도시 이방인'들이 벌이는 사랑
기사입력 1998년 04월 29일 14시 34분
대개 멜로영화라는 장르는 구성방식에 있어서 일정한 `문법'을 지키기 마련이지만 `토요일 오후2시'는 그러한 문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으로 여타의 멜로영화와 차별성을 띠고 있다.
멜로영화치고는 보기 드물게 `캐릭터무비'의 틀을 차용, 남녀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 개성넘친 캐릭터를 부여한 게 바로 그점이다.
남자주인공 윤태（김민종）에게는 단 한번도 히어로의 이미지가 주어지질 않는다.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였다가 속옷차림으로 도망가거나 폭력조직에 끌려가 늘씬하게 얻어터지기만 할 뿐이다.
블랙 정장 슈트에 오렌지색 스카프로 멋을 낸 소매치기 두연（이승연）은 지갑보다 사랑을 훔치고 싶어하는 인물.
두연과 윤태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두연을 체포하려는 형사 상구（장동직）와 폭력조직 보스 달수（유오성）.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흉내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속삭이는 윤태의 모습에서 두연은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한다.
윤태 역시 고가의 미술품이나 비싼 시계를 선물하는 두연을 돈많은 여자로 알고 자신의 꿈을 이뤄줄 것으로 기대한다.
소매치기 사건을 수사하며 두연을 감시하던 상구는 두연에게서 옛 여인을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형사는 용의선상에 올라있는 소매치기를 사랑하고, 소매치기는 돈많은 여자나 쫓아다니는 지골로를 사랑하고, 그 건달은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줄 돈많은 여자를 그리워한다.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떠도는 아웃사이더들인 이들의 관계는 이렇듯 모두 어긋나 있다.
민병진 감독은 신인감독답지 않게 `유행'을 선택하지 않았다. 알게모르게 왕가위나 타란티노에 매료되고 있는 `요즘의 흐름'에서 훌쩍 빠져나왔다.
현란한 카메라워크 대신 단조롭지만 솔직한 화면을 구축하면서 `눈치'를 보지 않았다. 빠른 템포로 달려가던 드라마가 두연과 윤태만 한 시퀀스에 들어오면 늘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민 감독의 배짱과 용기는 칭찬할만하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주고 있으나 극 전체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한 `아이러니'가 못내 아쉽다.
오랫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나타낸 이승연과 김민종의 변신열연은 합격점.（5월2일 서울극장）
◇평론가들의 별점
이용관（중앙대교수）-★★1/2 전찬일（영화평론가）-★★★1/2 양윤모（서울예전교수）-★★★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