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주니치메일] 상대 '꼼수' 눈에 훤히 보여
기사입력 1998년 04월 27일 15시 18분
요즘 머리를 써야 살아 남는다는데 내게도 이 머리쓰는 문제가 큰 과제다.
어떻게 하면 상대투수나 포수보다 더 머리를 잘 돌릴 수 있을까.
야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머리 회전이 뒷받침돼야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기록, 다양한 포메이션, 다채로운 작전에다 개인적으로는 수읽기에 능하고 날카로운 센스와 빠른 판단력을 갖춰야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게다가 여기는 `현미경 야구', `통계 야구'가 판치는 일본이다.
강약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미세한 버릇까지 꿰뚫어 보는 것을 장기로 한다.
선동열 선배가 지난 96년 처음 왔을 때 이 `현미경 야구'에 고전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나는 타자이니까 투수인 동열이형보다 나은 편이지만 일본 투수들은 내가 강하고 약한 코스와 구질을 철저히 분석해 공략해 온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당연히 패배자가 된다.
그래서 나도 머리속의 `뇌세포'를 일깨워 톱니바퀴처럼 회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타석, 이 볼카운트에서 상대 벤치와 배터리는 어떤 공을 던져 승부를 걸 것인가, 내가 어느 타이밍에 뛸 지 상대팀에서 알고 있을까 등등.
그런데 센트럴리그 5개팀과 한차례씩 대결한 뒤 맞은 `제2라운드'인 지난 21일 도쿄 진구구장의 야쿠르트전부터 상대팀의 수가 서서히 읽힌다.
예를 들어 일본 최고의 `컴퓨터 포수'라는 후루타는 몸쪽 바짝붙는 공을 투수들에게 요구한다.
게다가 약한 쪽에 주로 던진다는 상식을 역으로 이용해 내가 직구를 잘 친다는데도 직구를 많이 던지게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체인지업이나 뚝 떨어지는 변화구로 승부한다.
나는 이 포인트를 알고 오히려 변화구를 노려 야쿠르트 3연전에서만 타율 5할을 기록해 3할대로 복귀했다.
지난 24일 시즌 2호 홈런을 때린 나고야돔 히로시마전도 마찬가지.
기토-세토 배터리가 첫타석과 두번째 타석에서 투스트라이크 이후 포크볼로 승부를 걸어와 삼진을 당했는데 세번째 타석에서는 투스트라이크이후 변화구를 노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크볼이 밋밋한 각도로 들어와 냅다 갈겼더니 그 넓은 나고야돔을 120@나 날아갔댄다.
나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똑같은 코스에 승부를 걸다니, 또 당한다면 한국 언론과 팬들이 붙여준 `야구천재'라는 별명이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기분나쁜 것은 지난 16일 도쿄돔 거인전에서 갈베스가 내 헬멧을 맞혀 버린 것이다.
내가 `돌머리'인줄 시험했는가 보지.
[26일 오전 나고야의 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