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24)

기사입력 1998년 04월 27일 14시 39분


"이대위, 지금도 일본여자와 동행인가?"

버트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일본 정보국 요원들의 활약도 대단하더군. 왈리드의 아파트에서 셋이 죽었지?"

"버트, 네가 앞서 있다면 부탁이 있다. 내 여자를 찾아주게."

전화기를 고쳐 쥔 이준석이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브딘 지구에 있는 허름한 카페 안이었다.

홀 안에 손님은 한 테이블 뿐이었고 전화를 바꿔준 주인은 주방으로 들어가 있었다.

"버트, 난 네 일을 방해할 생각이 없어. 내 여자만 찾으면 돼."

"지금도 일본팀과 같이 있나?"

버트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나한테 연락을 해온 걸 보면 그 쪽은 한계가 온 것 같은데."

"난 빠져나왔어. 혼자다."

"대위,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조금 뻔뻔하다는 느낌도 없고?"

"어젯밤 내 저격총의 망원렌즈에 네 얼굴을 잡았어. 버트."

이준석이 이 사이로 말했다.

"초점 위에 네 얼굴을 올려 놓았단 말이다. 드라구노프였고 거리는 백미터도 안되었다."

"저런"이라 대꾸했지만 버트의 목소리가 조금 굳어졌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이유를 말할 차례인가? 대위."

"너하고는 원한이 없다. 내가 포트 사이드에서 하마니의 부하 핫산을 쏘았다."

"그랬군. 모리스도 쏘았나?"

"핫산한테 당하기 전에 구해냈어. 그래서 하마니의 거처를 알게 되었던거야."

"그런데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단 말이군."

"버트, 하마니의 거처에 내 여자가 있더냐?"

"유감이야. 대위, 모두 방울달린 놈들 뿐이었어."

"네가 포로를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한테 물어보았나?"

"대위, 난 네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

이준석이 땀이 밴 전화기를 바꿔 쥐었다.

"버트, 부탁인데 물어봐주지 않겠나? 은혜를 잊지 않겠다."

"그러지."

선선히 승낙한 버트의 목소리에 다시 웃음기가 배어났다.

"하마니가 네 여자를 데려갔다면 지금까지 온전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야."

전화가 끊겼으므로 어깨를 늘어뜨린 이준석은 길게 숨을 뱉었다.

주방에서 나온 주인이 그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비대한 체격이어서 마치 굴러오는 것 같다.

"커피?" 머리를 끄떡인 이준석은 홀의 벽을 등지고 앉았다.

그러자 온몸의 기력이 빠져 나가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침 여덟시부터 버트에게 연락을 했는데 이곳은 버트가 세번째 지정해준 장소였다.

도청을 피하려는 작전이다.

커피가 앞에 놓여 있었지만 이준석은 반듯이 앉은 채로 잠에 빠져 들었다.

주인이 다가오는 발자욱 소리에 퍼뜩 머리를 든 그는 온몸이 조금 개운해진 것을 느꼈다.

"전화요."

찌푸린 표정의 주인이 턱으로 카운터를 가리켰다. 서둘러 일어선 그는 카운터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

벽시계는 열시반을 가리켰다. 삼십분을 잔 것이다.

"여보세요."

"대위, 당신 친구의 전갈이요."

소음과 함께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귀를 울렸다.

"당신 여자는 살아있소. 여자가 어디 있는가는 하마니가 알고 있다는 거요."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이준석은 핏발선 눈을 치켜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