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23)
기사입력 1998년 04월 26일 15시 31분
버트는 권총의 총구를 사내의 이마에 붙였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심 하마니가 어디에 있는지 대라."
"난 모른다."
턱수염이 짙은 사내는 무릎을 꿇린채 앉아 있었는데 강인해 보이는 체격에 아직도 눈빛이 강했다.
거친 목소리로 말한 그가 피가 섞인 침을 버트의 바지에 뱉었다.
"알라는 위대하다. 이교도 놈아."
"훈련이 잘 되었다."
얼굴을 펴고 웃은 버트가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자 둔탁한 발사음과 함께 사내가 뒤로 넘어졌다.
"다음."
버트가 옆쪽 사내에게 다가가 뜨거워진 총구를 이마에 붙였다.
"하마니는 어디에 있느냐?"
이번 사내는 몸집이 비대한 놈으로 온 얼굴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눈을 치켜뜬 그의 시선에는 초점이 없다. 지하실에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는데 모두 흥분된 상태였다.
주위에 둘러선 대여섯 명의 부하들은 모두 굳은 표정이다. 버트는 네명의 포로중 벌써 둘을 사살한 것이다.
"너도 말하기 싫으면 관둬."하고 버트가 총구로 사내의 이마를 힘주어 밀었을 때였다.
"잠깐만."
비명같은 사내의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살려준다면 말하겠소."
"이 배신자, 말해도 죽어！"라며 옆쪽 사내가 소리치다가 부하의 발길에 채어 바닥으로 굴렀다.
"살려준다."
버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총구는 떼지 않았다.
"너 이제 네 조직으로 돌아갈수 없는 몸이야. 아무도 널 믿지 않을테니까. 하마니가 있는 곳을 대고나서 인도네시아로 떠나라. 내가 돈을 줄테니까."
그 순간 쓰러졌던 사내가 번쩍 머리를 들자 버트의 총구에서 섬광이 튀었다.
사내는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늘어졌다.
"자, 말해라. 이렇게 개처럼 죽을 필요는 없다."
"하마니는 알렉산드리아로 갔습니다."
넋이 반쯤 달아난 것같은 사내가 헛소리처럼 말했다.
"그 곳에서 리비아쪽 사람을 만난다고 했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이틀 후요. 만나는 장소는 모릅니다."
"하마니의 거처는 어디냐?"
권총을 내린 버트가 플라스틱 의자를 당겨 그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사내의 입에 물렸다.
"자, 아는대로 천천히 말해라. 친구."
잠시후에 버트는 이층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곳은 카이로 변두리의 공장밀집지역으로 근처에는 수백개의 공장건물과 함께 노동자의 숙소가 들어차 있었다.
버트가 부하들과 함께 들어 있는 곳은 폐업한 플라스틱 공장이었다.
"알렉산드리아로 떠난다."
버트가 던지듯 말하자 부하들이 제각기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전 10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하마니의 부하들을 신문했지만 버트는 조금도 지친것 같지 않았다. 문이 열리더니 부하 한명이 들어섰다.
"싸드, 호산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허리를 편 버트가 그를 바라보았다.
호산은 시내에 있는 연락원이다.
"무슨 일이야?"
"캡틴리라는 한국인이 만나고 싶다고 한답니다."
"캡틴리?"
버트가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그 놈이 이제 내가 먼저 가는 것을 안 모양이군, 그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