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자작곡 4곡 실은 4집앨범 '60만장 빅히트'
기사입력 1998년 04월 26일 15시 31분
10여년전. 서울. 어느 고층 빌딩. 1층 로비.
한 소년이 책가방을 들고 들어 섰다. 한참 머뭇대다 어느 청소부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나, 수학문제집..."
"그래, 얼마나?"
얼마간의 돈을 쥔 소년은 부리나케 그 빌딩을 뒤로 했다. 초가을 비가 뿌리는 거리를 걸으며 소년은 엄마를 떠올렸다. 파란 유니폼, 빗자루와 걸레.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 소년-가수 김정민（29． 본명 金正洙）.
한달전 발매한 제 4집 앨범 `점프 98'. 그 타이틀곡 `비（悲）', 그리고 `아모르'가 화제. 이미 60만장이 팔렸다.
`비'는 마이너스 발라드풍. 슬픈 분위기와 끈적끈적한 정이 묻어난다.
`내가 없는 너의 하루는/내가 없는 너의 방안은/내가 없는 너의 미소는/여전히 눈부실까...'
인터넷에 뜨는 김정민에 대한 멘트－`번개머리가 긴머리가 됐네.' `음악도 엄청 세련되고 성숙했어.'
번개머리는 짧고 뾰족뾰족 한 헤어 스타일을 지칭.
김정민의 4집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 `투유' 등 4개의 자작곡을 실었기 때문.
"`투유'는 내 친구의 영전에 바친 거다. 친구@기영은 결혼을 불과 1주일 남겨 두고 사고로 죽었다. `내 친구의 여자'는 얼마나 많은 얘길 기영에게 하고 싶었을까? `투유'를 통해 그걸 대신하려 했다."
행상으로 출발, 카페까지 장만해 정말 잘살아 보려던, 친구@기영. 정민에겐 이젠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김정민. 서울 태생. 성산초등학교@동도중@동도공고 건축과@경원공전 건축설비과 졸.
고교때 반장. 대학갈 염은 애당초 없었다. 그러나 고3때 어머니는 `웬만하면 대학에 가라'고 타일렀다.
대학 1년. 한번은 스쿨밴드-보헤미안의 공연을 봤다. 꽤나 근사했다. 고교때 심심풀이로 치던 기타. 그 실력만으로 보헤미안에 가입. 군대에 가서도 기타를 놓지 못한다. 92년 제대.
그해 한여름. 압구정동의 카페 `HQ'. 보헤미안 1기 후배 가수 김민우를 만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음반제작자와 연결된다.
얼마후 MTV 미니 드라마 `4일간의 사랑'의 주제곡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를 부른다. 이 주제곡은 잔잔한 파문을 몰고 왔다. 가수로서의 출발에 좋은 조짐이었다.
정민은 눈썹을 면도날로 밀고 두문불출. 브라이언 아담스의 `헤븐'과 김현식의 `어둠 그 별빛'을 고함지르듯 불러댔다. 목을 틔우기 위해.
이듬해 4월. 제 1집 앨범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를 낸다. 가요 순위 7위에 오른다. 이때 STV 미니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에 주인공역 제의가 들어 온다. 그러나 거절한다. 그땐 음악이 전부였다.
95년 10월. 제2집 `슬픈 언약식'이 뜬다. 가수인생도 함께 뜬다.
`강한 허스키 보이스'의 가수 김정민. 모난데다 내성적 성격. 그런데도 인간관계는 원만하다. `절제'와 `인내'탓이다.
한때 건축가가 꿈. 이젠 아니다. `영원히 기억되는 가수'이고 싶다.
"부모님이 요즘들어 부쩍 장가 얘길... 3년후쯤이나 가려한다. 여자친구도 몇명 있긴 하지만 애인은 없다."
더러 짬이 나면 비디오를 본다. `쇼생크 탈출' `아미스타드'는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진짜 괜찮은 건, 어머니와 둘이서 옛얘기를 하는 거다.
예순다섯의 나이에도 농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이젠 맏아들 정민에겐, 가슴 저리는 전설이 됐다.
한때, 아들이 가수가 된다니까, 그렇게 섭섭해 하던 어머니. 그러나 요즘 TV에 아들이 떴다하면, TV 앞의 붙박이가 된다. 얼마전 아들의 콘서트장에 들른 어머니.
`이눔아, 그 힘든 일을, 왜 하냐? 허긴, 다, 팔자소관이지...'
김정민. 이따금 밤새워 소주를 마신다. 어느 흑인의 노래 `게토에서（In the Ghetto）'를 흥얼대며.
`차갑고 흐린 시카고의 아침/눈발이 휘날리면서/가난하고 초라한 한 아이가 게토에서 태어나고/그의 어머니는 운다...차갑고 흐린 시카고의 아침/한 젊은이가 죽으면서/또 다른 초라한 아이가 게토에서 태어나고/그의 어머니는 운다.'
[서병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