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ML산책] 절대적 판정에 흔들리지 말자
기사입력 1998년 04월 24일 14시 05분
열흘 넘는 출장의 마지막인 밀워키의 밤은 참 쓸쓸하고 적적하다.
박찬호가 지거나 부진한 경기를 펼친 날은 취재 기자도 힘이 빠질수 밖에 없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바로 다음 해인 1913년, 그 당시 미국 중북부에서 가장 화려하고 근대적인 호텔이라는 선전하에 오픈한 위스콘신 호텔 6층의 낡디 낡은 방에서 4월달 박찬호의 다섯 경기들을 되새겨본다.
23일 밀워키전에서 6실점하고 4이닝만에 강판당한 뒤 박찬호는 공식 기자 회견이 끝나고 평소 늘 대하는 가까운 한국 기자들 앞에서 구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너무 인색했다고 털어 놓았다.
물론 공식적으로 미국 기자들 앞에서는 절대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대목이다.
이곳에서는 LA 다저스의 투수 박찬호가 돼야지 `한국인' 박찬호가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한국 투수이기 때문에 판정의 공정성을 잃었다는 투의 이야기가 흘러나가면 박찬호로서는 앞으로의 등판이 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저마다 다른 스트라이크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심판은 아주 넓은가 하면, 23일의 주심 크로포드처럼 좁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박찬호가 자신의 판단으로는 명백히 스트라이크로 보이는 것을 불러주지 않자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리자 기분이 상한 크로포드는 곧이어 던진 두개의 100％ 스트라이크성 공을 모두 볼로 판정했다.
기분 나쁜 미소로 주심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경고다.
올시즌 5번의 등판에서 심판의 판정이 비교적 후했던 것은 지난 18일 시카고 커브스전이 유일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가 스트라이크에 인색한 주심들이 걸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원칙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한 심판들의 재량을 철저히 인정하고, 특히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권리를 준다.
물론 같은 스트라이크존을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한다는 대전제가 따른다.
그동안 주심의 판정이 까다로울 때마다 박찬호는 "어떤 투수에게나 있는 일이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물론 박찬호가 한국 출신의 투수이기 때문에 판정에 인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그러나 박찬호의 마음 자세는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불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정면 승부로 타자들이 헛스윙을 해버리면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의 에이스급이 되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平常心）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밀워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