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지구촌] (4)젖먹이까지 뻐금뻐금 '담배천국'
기사입력 1998년 04월 21일 15시 05분
다니족만큼 담배를 좋아하는 부족도 드물 것이다.
이들은 주식인 고구마 못잖게 기호품인 담배를 즐겨 피운다. 어쩌다 마을을 찾아온 여행자와 마주치면 어른 아이 가릴 것없이 담배 한대 달라고 손을 내민다.
담배 연기를 무슨 회충약이나 소독제로 여기는지, 코흘리개 아이들 중에도 골초가 많다.
모두다 담배를 물고 다녀서 그런지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 아이들도 담배를 찾는다. 젖먹이들은 찔찔 울다가도 담배만 주면 금방 뚝 거친다.
다니족 마을을 찾아갔을 때, 필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고 엄마 품에 안긴 꼬마가 침을 꼴딱 삼켰다.
장난 삼아 한개피를 건네줬더니, 그 맹랑한 꼬마녀석은 입에다 담배를 꼬나물더니 엄마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칭얼대는 게 아닌가.
능숙하게 담배연기를 들이켜마셨다 내뿜는 폼이 마치 인생을 달관한 노인의 폼처럼 세련되고 근엄해(?) 보였다.
다니족들은 `동방예의 지국'의 담배 예절과는 아예 담을 쌓아버렸다. 시아버지, 며느리, 손자가 버젓이 맞담배질을 하며 나들이 하는 모습은 예사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균형을 이루는 법. 다니족은 젖먹이 골초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담배를 좋아하지만, 술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다. 다니족 원주민의 대부분은 알콜 냄새를 한번도 맡은 적이 없다.
다니족들이 사는 와메나 지역엔 술의 반입이 철저히 차단된다.
칼이나 창, 독침 등을 언제나 집안에 두거나 휴대하고 다니는 다니족들이 술을 마시고 끔찍한 사고를 낼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외국 여행자들을 위해 개설한 와메나 중심가의 호텔(여관 수준)에서도 맥주를 팔지 않는다.
이처럼 외부 문명과 담을 쌓고 지내던 다니족들에게 얼마전부터 잘사는 나라들의 물질문명이 `개화'란 이름으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최근 와메나 중심가에 시설은 조악하지만 영화관이 들어섰다. 경찰서와 은행은 물론 시장까지 형성되고 있으며, 일제 차들이 관광객을 싣고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홀랑 벗고 다니는 걸 편하게 여기던 석기시대 사람들이 돈맛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돈을 벌고 활용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벌써 그런 나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외지인들을 자주 접해 온 다니족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장승처럼 꼿꼿이 서서 포즈를 취한다. 촬영이 끝나면 예외없이 손을 내민다. 아이들은 관광객을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도와줄 일거리를 없나 두리번거린다.
조금이라도 신세를 졌다 하면 가차없이 돈을 요구한다. 깊은 오지를 제외하곤 시내와 가까운 부락의 다니족은 이미 그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