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안달훈 2단●이봉근 7단
기사입력 1998년 04월 20일 14시 32분
제5보(72∼100)＝프로의 바둑은 치명적 실착으로 일시에 무너지는 경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완착들이 승부의 변수로 작용할 때가 훨씬 더 많다. 더구나 그 완착들이 누적되다보면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기 쉽다.
이 판의 경우도 마찬가지. 현재 백의 우세는 백이 잘 두어서라기 보다는 중반 이후 누적된 흑의 완착 내지 실착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바둑이란 우세한 국면을 지켜 내기가 더욱 힘든 법이며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것이 또한 바둑이다. 본보에서 백은 약간의 욕심이 발동해 위기의 국면을 맞을 뻔한 순간이 연출되는데 그 수순을 추적해 보자.
백 72는 좌하귀를 선수로 확보하려는 의도. 79까지는 예정된 수순이다. 이미 백 △는 활용의 임무를 마친 돌들이므로 가치가 적다. 백 80, 82의 기분좋은 예약성 끝내기를 선수로 해치운 뒤 84에 잇는 백의 손길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이젠 집으로도 모자라지 않고 공격당할만한 곤마도 없는 국면이라 별 실수 없이 마무리만 하면 무난히 골인할 수 있는 백이다.
그런데 이런 여유로움이 자칫 방심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백 92가 바로 그런 수다. 이 수는 방심이라기 보단 욕심에 가깝다. 중앙 흑진에 한줄이라도 더 들어가 깨겠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같은 사소한 욕심이 지금까지 이뤄놓은 우세를 한 순간에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승부사라면 누구나 뼈저리게 경험해온 터일 것. `가'로 연결해 가든가, 93으로 한칸 늦췄으면 무난한 국면이었다.
그런데 흑 99가 절호의 찬스를 무산시킨 완착으로 패착. [참고도] 흑 1, 백 2 교환 뒤 흑 3이 백의 치명적 아킬레스건으로, 5까지 백의 위기국면.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