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18)
기사입력 1998년 04월 20일 14시 32분
"정대령도 조바심을 치고 있군."
전화기를 내려놓은 워렌이 피터슨을 바라보았다.
나일강가의 카이로 세라턴호텔 객실 안이었다.
"이준석이 혹시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된 모양이야."
그는 방금 한국대사관의 정필수와 통화를 한 것이다.
피터슨이 회색 눈을 좁혀 그를 바라보았다.
"한일 양국 대사관의 전화는 모두 도청되고 있으니까요. 아직까지 수상한 착발신 통화는 없습니다."
그리고 주요인물에게는 24시간 미행이 따라붙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에 비하면 한국측은 우리에게 협조적이야."
"일본은 K－7 장치의 소유권이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요시에가 일본측에 붙었을 테니까."
왈리드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된 세 명의 동양인은 모두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소지품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중 한 명의 신원이 베를린 주재 일본 상사원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두 CIA의 발빠른 행동의 결과였고 이집트 정보당국은 일본측에 압력을 넣고 있는 중이었다.
"이준석이 사건의 핵심에 있어. 어떻게든 그 자를 우리 수중에 넣어야돼."
창밖의 나일강에 시선을 준 워렌이 말을 이었다.
"왈리드는 총에 맞아 죽었지만 일본측에 무언가 털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 놈들은 우리보다 앞서 있어."
"하마니파 결사대 셋이 현장에서 같이 죽은걸 보면 왈리드는 하마니파와 연결된 놈입니다. 왈리드가 이글이지요."
"하지만 아직은 알 수가 없어."
워렌이 입맛을 다셨다. 이쪽은 계속해서 뒤만 쫓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시체로만 남겨졌으므로 왈리드가 이글인지도 알 수가 없다.
"싸드가 우리보다 앞서 있을까요?"
피터슨이 생각난듯 묻자 워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하지만 왈리드의 소식은 알고 있겠지. 그 놈도 다 잡은 고기를 놓친 셈이 될테니까."
그날밤 람세스 중앙역 뒤쪽의 주택가에는 가끔씩 밤하늘을 무겁게 울리는 열차의 경적만이 울릴뿐 정적에 덮여 있었다.
아랍식 건물이 오밀조밀 들어선 지역이어서 좁은 골목길에는 차량 통행도 되지 않는다.
골목의 입구에 서 있던 아이드가 건너편의 예합을 바라보았다.
"예합, 물병 가지고 왔나?"
"아니."
담에 기대서 있던 예합이 짜증난듯 말했다.
"30분 후면 교대다. 참아."
이 곳은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의 입구였으니 그들 둘은 최전방의 경계병인 셈이다.
이미 앞쪽 거리에는 인적이 끊겨 있었고 건너편 역의 희미한 등불 밑으로 오가는 여행자 서넛만 보였다.
아이드는 검은 군용잠바 밑으로 매단 AK기관총을 고쳐 매었다.
개머리판을 떼어 냈으므로 짧고 뭉툭한 AK－47Ⅲ형인데 단거리 살상용이지만 소사로 500@ 거리의 집단도 쓰러뜨릴 수 있는 위력이 있다.
"빌어먹을. 요즘 같아서는 삭막해서 못해 먹겠군."
혼잣소리로 투덜거린 아이드가 무심코 거리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개 한마리 보이지 않던 거리를 두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이어서 형체만 보였는데 빠른 걸음이다. 예합도 그들을 본 모양으로 담에서 등을 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