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ML산책] 피아자 팬 야유에 한풀 꺾여
기사입력 1998년 04월 17일 14시 40분
이디오피아에서 왔다는 택시 기사 멩게샤와 덴버 공항에서 야구장 쿠어스 필드까지 요금 흥정이 잘 안될때부터 조짐이 안좋았다.
해발 1,600m라서 그런지 검은 구름이 더욱 가깝게 보이더니 다저스와 콜로라도의 지난 15일 경기가 비로 두번이나 중단됐고, 16일에는 아예 눈이 퍼부어 경기가 취소됐다.
라커룸으로 내려가니 선수들은 TV로 야구 경기를 보고 있고, 구원 투수 거스리와 후보 포수 프린스는 늘 그렇듯 카드놀이에 빠졌고 박찬호만 자전거를 타며 땀을 흘리고 있다.
미국 기자들은 쿠어스 필드에만 오면 펄펄 나는 포수 마이크 피아자 주위에 몰려있다.
지난 5년여간 다저스의 간판 선수이자 내셔널리그에서 첫 손에 꼽히는 강타자로 군림해온 올해 서른살의 피아자가 요즘 상당히 달라졌다.
오만방자하고, 자기만 알던 피아자가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최근 충격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
시즌 첫 원정에서 1승4패로 부진하고 홈으로 돌아온 첫날인 지난 8일 피아자는 난생 처음 홈구장의 팬들에게 심한 야유를 들어야했다.
늘 최고의 우상으로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받들던 LA의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퍼부어대자 피아자는 크게 당황했고, 삼진을 당할때마다 야유는 더욱 커져갔다.
마침 바로 그 주에 캘리포니아의 복권 총 상금액이 8천만달러 이상으로 치솟아 일반 시민들은 복권을 파는 상점마다 줄을 지었었다.
그런데 자기들이 그토록 믿고 열광하던 피아자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평균 최고액인 6년간 8천100만달러를 주겠다는 다저스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달러짜리 복권 몇장에 꿈을 부풀리던 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탐욕스런 피아자와 에이전트 댄 로자노는 가는 곳마다 팬들의 도마에 올랐고, 피아자는 결국 모든 협상을 시즌 뒤로 미루고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스타답게 이틀 연속 만루 홈런을 뿜어내며 일부 팬들의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워낙 충격이 심했는지 피아자는 동료들을 대하는 자세가 적극적으로 바뀌고, 기자들에 답변하는 태도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건방을 떨던 피아자에게도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팬들이었나보다.
17일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하니 또 비가 내린다.
출장다니면서 `IMF' 못지 않게 소름끼치는 것이 `엘니뇨'가 돼버렸고, 이 비가 밤새 눈이나 되지 말아야 내일 박찬호가 등판할텐데….
[시카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