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나처럼 이쁜 소매치기 봤어요?'
기사입력 1998년 04월 16일 15시 19분
오후 7시40분.
흰색 크라이슬러 캐러밴이 어둠이 내린 광화문 한쪽 모퉁이를 돌아 급히 섰다. 문이 열리자 미모의 여인이 차에서 내렸다. 꼬리를 흔드는 세인트버나드에게 볼을 맞추고 돌아서는 미모의 주인공은 이승연.
찢어진 청바지에 하늘거리는 흰색 남방. 가슴선이 드러나는 남방의 한복판에 선글라스를 걸친 이승연은 자극적인 향내를 뿌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약속시간보다 10분정도 늦은 걸 싱그런 미소로 대체하는 여유. 씩씩하게 손을 내밀어 마주잡더니 `털썩' 주저앉는다.
"차가 굉장히 막히네요. 화 안내죠? 이해하실 수 있죠? 뭐, 이해못하면 할 수 없구요."
거침이 없다. `귀여운 여인'.
식탁에 놓여있는 생선회 한 점을 집어들어 입안에 넣으면서도 이야기는 쉬질 않는다.
"영화요, 모처럼 너무너무 재미있게 찍은 거 있죠? 술 한 잔 받으세요. `토요일 오후2시' 제목이 감각적이지 않아요? 지금 뭐하세요? 첫잔은 무조건 완샷이에요."
상대를 잠시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술은 기분으로 먹는 거라며 `주도'를 강변하는가 싶더니 술친구가 좋아야 술맛이 난다면서 `친구론'으로 건너 뛴다.
언젠가 잠원동의 한 포장마차에서 김민종과 신승훈, 고소영 등이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더라는 얘기를 꺼내자 무릎을 `탁' 친다.
"그날요, 나만 못 끼었어요. `세이세이' 녹화끝나고 함께 뭉치기로 했는데요, 방송국팀들하고 회식하느라구 못갔죠. 거기 `별장'이란 데죠? 거기 승훈이랑 민종이하구 자주 가는 데예요."
최진실 고소영 김민종 신승훈이 이승연의 술맛을 돋우는 친구들이다. 얼마나 마시길래.
그러나 `주도'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과는 달리 별로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한단다. 그런데 옆 사람에게 술 권하는 `기술'은 여간 능숙하질 않다.
상대를 편하게 하는 재주도 여간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자기 팬으로 만들어버린다."편하게 불러도 돼죠? 형, 어때요?"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이야기가 어느쪽으로 튈지 모른다. 대화의 소재도 끝이 없어 보인다. `세이세이' 자랑을 늘어놓는가 하면 결혼관을 피력하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 자랑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덧 10시를 가리킨다. 소주 몇 잔에 발그스레해진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더니 늦게 가도 괜찮은지를 묻는다.
"연락할 일 있을 때, 매니저한테 하지 말구요. 직접 전화주세요."
핸드백에서 메모쪽지를 꺼내 뭔가 끄적댄다.
`이승연 핫라인'.
주섬주섬 일어서는 이승연. 영화얘기는 별로 한 게 없다.
"영화요? 나중에 보세요. 제가 소매치기잖아요. 재미있어요. 제 말 믿어도 돼요."
`귀여운 여인'은 관능의 향기를 남기고 그렇게 광화문을 떠나갔다.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