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의야구생방송] 김재박 '선수 기살리기' 용병술
기사입력 1998년 04월 14일 14시 44분
감독은 그라운드의 덕아웃에서, 해설가는 중계석에서 경기를 바라본다.
각자가 처한 현실적인 공간의 차이만큼 승부에 대한 느낌의 차이도 크게 마련이다.
지난 11일 잠실 개막전에서 현대는 3_1로 앞선 9회초 외국인선수 쿨바의 안타로 무사 1루의 기회를 잡았다.
다음타자는 왼손 이숭용. 이때 LG 천보성감독은 왼손 민원기를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쿨바는 당연히 이숭용에게 번트 사인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김재박감독은 강공으로 밀고 갔다.
이날 선발 정민태는 LG 타선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지만 왠지 2점을 지키기가 힘에 부친 느낌이었다.
구원전문 조 스트롱을 언제 등판시킬지 관심있게 지켜봤지만 김감독은 정민태를 완투시켰다.
이 점에 대한 궁금증을 13일 중계에 앞서 김감독에게 물어 보았더니 한마디로 선수에 대한 믿음과 장기 레이스에서 팀의 중심선수들이 가져야 할 자신감을 불어 넣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투수 로테이션의 중심축인 정민태가 초반부터 투구수를 줄이면서 공격적인 피칭을 보인데다 중반 이후에는 완투를 생각하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을 간파한 김감독의 결단이었다.
이숭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해 박경완과 이명수의 가세로 하위타선이 강해진 현대는 중간 연결고리인 이숭용의 활약에 따라 득점력이 좌우될 것이 분명하다.
상대투수가 왼손인데다 1점의 추가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강공을 선택해 5번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김감독은 팀승리보다 선수의 자존심을 살려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지난해 팀간 성적에서 5승13패의 열세를 보인 현대로선 올시즌 LG의 벽을 어떻게 뛰어넘느냐가 상위권 진출의 열쇠.
반면 LG는 우승후보로 지목된 현대전이었기 때문에 개막전 승패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선수의 마음까지 파악할 수 있는 감독의 용병술은 페넌트레이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승패의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