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수첩]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기사입력 1998년 04월 14일 14시 44분
최근 우리 연극계는 서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공연들이 잇달아 무대에 올랐거나 오르고 있다.
대형무대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악극 `눈물젖은 두만강'과 `불효자는 웁니다',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등이 그것들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들이 `우리 연극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렸다'는 일부 조소어린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로부터 인기를 끈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의 보편적 삶의 정서를 담았기 때문이다.
극단 신화(대표 김영수)가 서울 인간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김태수 작, 김영수 연출) 역시 인간냄새가 풀풀나는 서민연극이다.
대형무대에 악극이 있다면, 소극장 무대엔 바로 `땅끝에…'가 있다.
이 공연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서민들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려는 끈질긴 도전과 희망을 가슴뭉클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 무대가 가치있는 것은 서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져 주는 감상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소박하고 순박한 이들의 꿈을 파괴하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이발사 만배,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때밀이 상우, 따뜻한 마음을 지닌 식당주인 진숙, 챔피언을 꿈꾸는 복서 준호.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기생충과 같은 폭력배의 무자비한 무력행사에 저항,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지키려고 한 용기가 그것이다.
극작가 김태수는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본 서민들의 삶의 풍경화묘사가 아닌 폭력의 대항이라는 적극성을, 연출가 김영수는 그러한 서민들의 내면을 잘 우려낸 곰탕의 진국처럼 만들어냈다.
연기파 배우들의 풋풋한 인간냄새가 나는 인물형상화도 인상적이다.
이발사 역의 서희승은 자연스럽고 친근감 넘치는 만배를, 3년 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한 김상중은 절제된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최준용의 편안함, 김진만의 새로운 등장, 양창완의 성장도 눈여겨 볼만했다.
잦은 암전과 너무 잘 다듬으려고 한 화술과 연기력이 다소 거칠게 느껴지지만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볼만한 무대다. 5월 31일까지.(02) 923_2131
[박용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