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11)
기사입력 1998년 04월 12일 15시 53분
방안으로 가네다의 부하 하나가 들어 섰는데 손에는 수첩이 들려 있었다.
"조장, 놈의 수첩에 일정표가 있습니다."
가네다와 이준석이 심문하는 사이에 두명의 부하가 집안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네다가 수첩을 펼쳤다. 아랍어로 씌어져 있었는데 군데군데 영어도 있다.
그가 수첩을 넘기는 사이에 이준석은 왈리드에게 다시 물었다.
"동양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라."
"난 얼굴만 보았을 뿐이오. 같은 버스에 탔지만 말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중 한명이 내렸어. 분명히."
이준석이 부릅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네놈 일행이 데려갔다."
"당치도 않습니다. 나는 그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오."
그러던 왈리드가 퍼뜩 시선을 들었다.
"동양여자 중의 한명이 죽은 소노다 박사와 버스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소노다 박사라는 것도 신문에 난 사망기사 사진을 보고 알았소."
이준석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의 눈 앞에 펼쳤다.
오경미의 사진이 끼워져 있는 것이다. 사진을 바라본 왈리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 여자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침실의 불이 꺼졌으므로 그들은 긴장했다.
바깥쪽 응접실에서도 부하들이 당황했는지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토, 나가봐라."
가네다가 낮게 말하는 소리가 났다. 이준석은 불이 꺼진 순간 한걸음에 벽에 등을 붙였고 눈을 감았다.
어둠에 눈을 익히려는 것이다. 곧 눈을 떴을때 그는 가네다가 자신과 두 발짝쯤 떨어진 옆쪽의 벽에 몸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가네다의 두눈 흰창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 순간 바깥쪽 응접실에서 무거운 물체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고 몽둥이로 모래자루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났다.
이준석은 저도 모르게 몸을 숙이고는 허리춤에 꽂은 베레타를 빼들었다.
소음기를 낀 권총의 발사음이다. 다시 발사음이 서너번 더 울렸고 가구가 넘어지는 소리도 났다.
"대위, 뒤를 따르시오."
가네다가 다급하게 말하고는 앞장섰다. 문 옆으로 다가간 그는 힐끗 방쪽을 돌아보더니 권총을 겨눴다.
"퍽！"
무딘 발사음이 울렸고 침대가에 앉아있던 왈리드가 비명 한번 뱉지 못하고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왈리드를 쏜 것이다. 가네다는 응접실로 몸을 굴려 뛰쳐 들었다.
응접실 안은 외부의 빛도 차단되어 있었으므로 먹물속 같이 어두웠다.
그리고 조용했다. 응접실 안에는 세명의 부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벽쪽의 소파로 몸을 굴린 가네다는 물컹한 물체에 부딪히자 와락 긴장을 했다.
사람이다. 그러나 바닥에 엎드린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둔탁한 발사음이 터졌다.
"퍽！ 퍽！ 퍽！"
가네다가 다시 몸을 굴린 순간이다.
"탕！ 탕！"
요란한 총성이 응접실을 울렸고 낮은 비명소리와 함께 가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준석이 맞힌 것이다.
"문으로！"
뒤쪽에서 이준석이 짧게 외치자 가네다는 문쪽으로 몸을 굴렸다.
이미 부하들은 다 죽었다. 뒤를 이준석에게 맡기고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