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김선아(4) 중학교 수영부서 첫사랑 '가슴앓이'
기사입력 1998년 04월 12일 15시 53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온 가족이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빨리 적응하기 위해 동경 시내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 편입했는데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자 외국인이었다.
히라카나도 모른 상태에서 시작한 일본 생활. 한일, 일한, 옥편, 영어사전 등 사전 4개를 가지고 학교에 다녔다.
가자마자 시험을 봤는데 역시 꼴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당연히 전교 꼴등을 할 줄 알았는데 `탁월한' 영어 실력 덕분에 최하위를 면했다. 국어(일본어)는 빵점을 맞았지만 수학과 영어 시험에서 반타작을 한 것. 수학과 영어도 문제가 해석이 안된 상태에서 답을 썼으니 얼마나 상상력을 동원했겠는가.
그러나 난 이지메란 아예 모르고 살았다. 첫 담임 야마가미 선생님이 나를 위한 교재를 따로 만들어 주시는 등 특별 배려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입학한지 일주일만에 합창대회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를 피아노 반주자로 결정했다.
다섯살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내게 반주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후 시상식 때. 줄 맨 뒤에 앉아 열심히 딴청을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전교생이 내가 서 있는 쪽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뭘 잘못했나 싶어 식은 땀이 흐르는 순간, 선생님이 빨리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쭈뼛쭈뼛 단상으로 나가니 교장 선생님이 상을 주셨다. 특별 반주자로 선정된 것. 이 표창장 한장으로 인해 난 애들 사이에서 완전히 인정을 받았다.
그뒤 일본 생활은 일사천리. 3개월이 지나자 차츰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방과 후면 집 앞에서 몇시간씩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또 번화가 신주쿠를 동네 앞 길 삼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일본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성격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편입하자마자 난 수영부에 들었다. 말 한마디 안통하지만 `뻔뻔함'을 최대의 무기로 내세워 친구들을 하나 둘씩 만들어갔다.
그리고 수영부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이름은 세구치. 유명가수 마치를 닮은 아이로, 먼발치에서 그 아이를 보며 애태우기 몇달여. 말 한번 제대로 못걸어보고 막을 내렸다.
그 이후 소식을 모르고 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세구치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 애 생각을 하며 한참을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