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수업은 듣고싶은데 강의실이 멀어-카풀바람
기사입력 1998년 04월 09일 14시 47분
`기동력이 학점을 좌우한다'.
캠퍼스내 건물 사이를 승용차로 옮겨다니며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건물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쉬는 시간 10분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가 그렇다.
이공대 건물에서 사범대 건물까지는 남학생들의 잔걸음으로도 20분은 걸린다.
이 때문에 공과대 학생이 이공대 건물에서 전공과목을 들은 뒤 바로 다음시간에 사범대 건물에서 시작되는 교양수업을 차질없이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 바람에 수강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학생도 적잖다.
학생들은 그동안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롤러스케이트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전거는 분실사고가 잦은 데다 마땅히 보관할 만한 곳이 없고, 롤러스케이트 역시 신고 벗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좋은 방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승용차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고려대 재료금속공학과 오병석군(2년)은 "일본어 강의를 듣고 싶었으나 사범대 건물이라 포기하려 했었는데 마침 차를 갖고 다니는 친한 선배가 같은 과목을 수강신청을 하는 덕에 얹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쯤되니 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는 오너들 주변에는 늘 학생들이 북적댄다.
그들을 놓치면 강의도 놓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다.
이용자들이 이따금씩 500∼1천원씩 모아 기름값이나 주차비를 보태기도 하는 것이다.
이같은 캠퍼스내 카풀은 경기도 용인의 한국외대 지방캠퍼스나 서울산업대 등 캠퍼스가 비교적 넓은 학교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특히 이들 학교에서는 주변의 당구장들이 미니버스를 동원해 단골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단골들의 강의시간표를 미리 체크해 뒀다가 강의가 끝날 시간에 맞춰 캠퍼스로 진출, `수송작전'을 펼치는 것.
일부 학생들은 미리 당구장 주인에게 차량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물론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라 그 거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편 차가 없어 특정과목의 수강신청을 포기한 학생들은 "다음 학기부터라도 전공과 교양과목을 무리없이 들을 수 있도록 강의실 배치가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백승협 명예기자(고려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