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박찬호 중계권 따내기 유감
기사입력 1998년 04월 08일 15시 26분
낯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7일（한국시간） LA 포시즌 호텔 1604호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티모시 브로스넌 MLBI 사장은 마치 지금까지 시중에 떠돌던 박찬호 중계를 둘러싼 소문들이 모두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리에 나온 것 같았다.
브로스넌은 KBS, MBC, SBS 등 3사에 공정한 기회를 주었으나 계약을 할 뜻이 없다는 느낌을 받아 자신들이 먼저 인천 방송과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요즘 한국이 어려운 상황인데 연간 최소 300만달러가 말이 되느냐고 묻자 어떤 방송의 누가 지어낸 액수인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그런 액수를 주장한 적은 없다고 강변했다.
인천 방송과 계약을 끝낸 뒤에도 다른 방송들이 계속 MLBI와 접촉을 시도한 것이 사실이냐는 묻기 싫은 질문을 던지고 난 뒤의 기분은 참담했다.
서울의 대행사인 IMG사를 통해 인천 방송과 계약한 100만달러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줄테니 자기 방송과 다시 계약하자는 접촉이 몇차례 있었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브로스넌에게 비아냥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은 자격지심일까.
`거인 방송'들은 느닷없이 `난쟁이' 인천 방송이 박찬호 중계권을 따냈다는 발표에 시국을 외면한 외화 낭비라며 근거 없는 액수를 들먹이고 서슬 퍼런 IMF를 들이대기도 했다.
그러나 외화를 그렇게 아낄줄 아는 방송들이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에서 2∼3배의 액수를 제시하며 인천 방송과의 계약을 파기하라는 도덕적 타락을 MLBI에 요구한 것인가.
박찬호의 모든 경기와 올스타전, 월드시리즈를 포함한 110게임을 100만달러에 계약했다면 게임당 약 9천달러.
IMF 시대를 힘겹게 버티는 우리 국민들이 박찬호의 분투를 보며 가슴이 잠시나마 후련해 진다면 그 액수를 외화 낭비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적어도 MLBI 관계자들에게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방송사들이 뒤로 담합하고, 결국 물건을 빼앗기자 다시 사기극을 펼치자고 유혹하는 파렴치한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LA＝민훈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