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봄바람난 수말들 '춘정 레이스'
기사입력 1998년 04월 08일 15시 26분
과천경마장에 춘정（春情）레이스가 한창이다.
청계산의 봄바람을 타고 암말들의 암내가 번지자 춘정에 불타는 수말들이 이변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마는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나 청년기에 해당하는 숫처녀, 숫총각들로 봄만 되면 이성을 그리워 하게 된다.
수말들은 이 때문에 암말만 보면 `히이잉'거리거나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희롱하는데 짓궂은 놈은 암말의 꼬리를 물어 들춰보기도 한다. 꼬리는 사람의 치마와 같기 때문이다.
암말들은 수말이 다가오면 수줍은 나머지 꽁무니를 빼고 수말은 기를 쓰고 쫓아가는 진풍경이 경마장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경주에서도 나타나 암말과 수말이 나란히 1, 2위로 골인하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제3경주에서 수말 `다솔'이 암말 `열화'의 꼬리라도 물듯 따라붙자 `열화'가 기를 쓰며 뺑소니를 치고 `다솔'은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질주, 이들 두마리가 처음부터 1, 2위로 달려 그대로 골인했다.
이처럼 암말과 수말이 순서대로 1, 2위를 차지한 경우가 봄철로 접어든 지난 3월초부터 지난 5일까지 한달여 사이에 무려 9번이나 발생했다.
이로 인해 고액배당이 터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4일 제8경주의 경우 암말 `대길운'과 수말 `금산봉'이 1, 2위로 골인, 복승식 마권에 27.3배의 두둑한 배당이 터지기도 했다. `대길운'은 입상후보로 예상됐으나 `금산봉'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말로 `대길운'에 쫓겨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는 옛말처럼 여기에 거세마들까지 끼어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한다.
지난달 21일 제1경주에서는 거세마 `고객감동'이 선두로 달리던 암말 `무한정우승'과 뒤를 쫓던 수말 `나이스보이' 사이로 끼어들어 이들 3마리가 1, 2, 3위로 골인했다.
이 바람에 23.4배의 굵직한 배당이 쏟아졌다. `무한정우승'과 `고객감동'은 복병마였고 `나이스보이'는 예상밖이었기에 이 역시 춘정에서 비롯된 결과로 풀이된다.
경주마들에게는 그러나 이성교제가 철저히 금지돼 있다. 혼전 순결을 잃을 경우 경주마로서 끝장이 나기 때문이다.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경마장에서 추방당한다.
조선시대에 족보가 없으면 과거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듯이 족보가 없는 말은 경주마로 데뷔시켜주지 않는 게 세계 경마계의 철칙이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경주마들이 이성간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격리시키는 등 감시에 주력하고 있다.
마사회 이승모 마필보건소장은 "따스한 봄볕이 암말의 머리카락을 자극하면 성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암내를 풍겨 수말들이 설레게 된다"며 "경주마들의 운동량을 늘려 성욕을 억제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규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