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8)

기사입력 1998년 04월 08일 13시 53분


"차를 세워라."

이준석이 총구로 운전사의 목덜미를 눌렀다.

"그리고 사드에게 전해. 오늘 일로 신세는 졌지만 아직 믿지는 않는다고."

택시가 길가에 멈춰 섰으므로 이준석이 문고리를 잡았다. 운전사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대위, 연락처를 드릴테니 언제라도 연락해 주시오."

이준석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사내는 가슴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차에서 내린 이준석은 곧 행인들 사이로 끼어 들었다. 한 낮이었고 인도에는 행인들이 가득찬 번화한 거리였다.

요시에가 아브딘 광장의 궁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7시 50분이었다.

궁전은 닫혀 있었지만 행상과 행인들로 입구는 꽤 번잡했다.

관광객 차림의 그녀를 보자 모조 유물을 파는 행상 하나가 끈질기게 따라왔는데 반쯤 위협적이었다.

요시에는 입구 근처의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광장은 어둠에 덮여졌고 가로등에 비췬 사내의 얼굴은 험악했다.

"10불"하면서 손에 든 목상을 요시에의 얼굴 앞에 디밀던 사내가 주춤 머리를 돌렸다.

이준석이 자신의 어깨를 움켜 쥐었던 것이다.

"갑시다."

행상을 밀어제낀 이준석이 요시에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들은 서두르듯 광장을 건너 길가의 카페로 들어섰다.

서양인 관광객이 한무리 모여 있었는데 동양인 손님은 그들 뿐이다.

맥주를 주문한 이준석이 요시에를 바라보았다.

"왈리드의 숙소를 알아내었소. 꽤 상류층이며 도키지구의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당신의 수단을 썼지. 300불을 주었더니 아파트 구조까지 그려주던데."

이준석이 미지근한 맥주를 맛있다는 듯이 두 모금을 삼켰다.

"그래서 오늘밤 왈리드의 아파트로 들어갈 계획이오.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들어가서 어떻게 하시려고."

"내 약혼자가 어떻게 되었나를 물어야지. 물론 당신의 그 귀중한 자료의 행방도 알아야겠고."

"순순히 말 할까요?"

"그건 그때가서 걱정할 일이오."

카페안은 후덥지근했고 특히 향 냄새와 담배연기로 가득차 있었다.

옆쪽 서양인 무리는 독일인들이었다. 그들은 세마디에 한번씩은 폭소를 터뜨려서 카페안은 떠들썩 했다.

요시에가 시선을 들었다.

"아침에 왜 혼자 나가셨지요?"

"혼자서 다니는 것이 나을것 같아서."

카페의 안으로 동양인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30대 중반쯤의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그가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으므로 이준석은 들었던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머리를 돌린 요시에가 사내를 보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어서 오세요. 가네다씨."

다가선 사내가 이준석을 향해 눈인사를 하고는 요시에의 옆자리에 앉았다.

"난 가네다라고 합니다."

사내와 요시에를 번갈아 바라본 이준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원군을 불러들였군. 요시에씨."

"일본정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정색한 요시에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둘 만으로는 힘들테니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