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신의 아그네스' 첫 도전 성공
기사입력 1998년 04월 08일 13시 53분
지난달 31일 밤 10시.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
관객들이 빠져 나간 썰렁한 무대 뒤의 분장실. 피범벅이 된 수녀복 차림의 김혜수는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내고 있었다.
절규하며 쓰러진 아그네스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던 탓일까?
난생 처음 연극무대 위에 오른 감흥때문이었을까?
연기생활 13년째를 맞으면서 그녀는 올초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무조건 연극을 한다'.
"반복 훈련과정이 매력"이라고 말했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연기력 대충전을 위한 치밀한 계산에서였다. 평소 "좀 아팠으면 좋겠다"고 농을 칠 정도로 건강체질을 자랑했지만 덜컥 탈도 났다. 영화 `찜'을 촬영하면서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준비하는 강행군이 쉽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TV의 각종 쇼 오락프로에 출연해 "저 난생 처음 연극해요"를 외치고 다녔다.
`신의 아그네스'는 지난 83년에 막이 올랐다. 윤석화와 신애라에 이어 김혜수는 3대 아그네스. 굵직굵직한 볼륨미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녀에게 수녀는 어색함부터 연상케 했다. `신의 아그네스'의 한 대사처럼 기관총도 숨길 만한 두툼한 수녀복은 그녀의 백만달러짜리 몸매를 꼭꼭 가렸다.
하지만 김혜수는 목소리와 몸짓으로 정상의 연기자임을 확인시켰다.
결코 쉬운 역이 아닌 `아그네스'가 그녀의 선 굵은 연기속에 안정감있게 되살아났다. 2회 공연만에 목이 쉴 정도로 열정을 쏟아부었고, 무대위를 뛰고 구르는 동작엔 힘이 실렸다.
`신의 아그네스'는 탯줄에 목이 감겨 죽은 아기가 수녀원 휴지통에서 발견된 사건을 파헤치는 게 줄거리. 자기 아기를 목졸라 죽이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게되는 아그네스는 신앙과 인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건강하고 튼튼한 미인으로 알려진 김혜수는 연극을 통해 한없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캐릭터로 태어난 셈이다. 그녀가 첫공연 뒤 흘린 눈물의 의미는 변신의 기쁨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