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장흥유원지에 '쉰세대' 몰린다
기사입력 1998년 04월 06일 14시 57분
"창밖에는 봄이 오고 있습니다."
디스크자키（DJ）의 감미로운 멘트가 흘러나오면 실내는 20여년전 여대생들의 심금을 울렸던 팝송 `키스앤세이 굿바이'가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DJ와 올드팝송, 엷은 조명.
영낙없는 70년대말 서울의 음악다방이다.
그러나 이 풍경은 낭만과 젊음을 상징하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들의 노스탤지어다.
물맑고 경치가 좋아 대학생들의 MT와 테이트 장소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장흥유원지.
하지만 요즘 장흥은 두개의 얼굴이다.
주말이나 공휴일은 여전히 연인과 가족들의 휴식공간이지만 평일 낮에는 40대 이상의 중년들에게 완전히 점령됐다.
물론 저녁은 가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젊은 커플의 차지다.
중년세대가 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 근린시설 건축을 허용하는 국토관리이용법이 발효되면서 부터.
수영장 3개에 불과했던 유원지는 토속음식점 등 레스토랑이 약 120개, 호텔 1곳을 포함해 50여개의 모텔이 세워졌고 면사무소부터 계곡쪽으로 3∼4㎞에 불과했던 규모도 산너머 기산리와 부곡리까지 넓어졌다.
특히 기산저수지를 중심으로 생겨난 업소들은 고풍스런 건축과 70년대 분위기로 중년들에게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
`주부가요제'로 이름난 이벤트 레스토랑 `작은영토Ⅱ'에는 지난 3일 오후 2시 4명의 주부가 50여명의 중년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동행' `만남' 등 구성진 레퍼토리로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
이숭현 기획실장은 "나이가 엇비슷하다보니 분위기가 자연스럽다"며 "낮에는 90％가 주부들이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주부 이모씨（43）는 "서울에서는 친구들끼리 맘놓고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없지만 대학시절 MT장소였던 이곳에 오면 옛날 추억에 젖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낮시간 기산리 카페타운을 찾는 주요 고객은 주부층.
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있다보니 가정주부들은 모임이나 동창회 장소로, 일부 주부 영업사원들은 단합대회 장소로 활용할 만큼 장흥은 중년의 건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IMF시대를 맞아 실직의 아픔을 추스르고 각오를 다지는 실직자들의 새출발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산리에서 `말머리고개'를 넘어 장흥쪽으로 내려가면 `건전한 문화공간'은 바람난 중년의 `불륜공간'으로 바뀐다.
모텔촌을 이룬 10여개의 러브호텔의 주차장에는 한낮인데도 번호판이 널판지로 가려진 승용차가 5∼6대꼴로 세워져 있다.
장흥면의 박기룡부면장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유원지가 유흥지로 변하는 듯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흥=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