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야망의 계절(3)
기사입력 1998년 04월 06일 14시 57분
사실 싸움에서 상대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 하지만 블랙이 등을 보이고 달아난 것은 적어도 약세를 보인 것임에 틀림없다.
블랙은 킹을 잘 몰랐다는 사실이 불행이었다.
블랙은 일단 자리를 피한 뒤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을 시도하겠다는 마음으로 달아난 것이지만 스피드에 관한한 킹은 사파리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블랙이 등을 보이자 킹은 승리를 확신했다.
등을 보인 적은 결코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의 등에 올라탄 킹은 한번 문 목덜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블랙은 큰 덩치를 뒤흔들며 킹을 떼어놓으려고 애를 썼으나 이번 전투에 정치생명을 건 킹은 더 악착스러웠다.
킹이 블랙을 초주검으로 몰고가는 사이, 킹파의 조직원들은 블랙파 졸개들을 재개발지구의 불량주택 부수듯 허물고 있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블랙파 조직원들이 킹파의 조직원에게 일방적으로 몰릴 만큼 약하지는 않았지만 보스가 달아나자 사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약장(弱將) 밑에는 강졸(强卒) 또한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역사에 가정(假定)이 없다지만 블랙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킹파와 블랙파의 전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블랙파는 풍비박산이 났다.
처음 데뷔했을 때 덩치와 분위기만으로 사파리를 휘어잡았던 블랙파로서는 거품이 빠지면서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이제 사파리의 권력구도는 바우파와 킹파가 최강 패밀리로 또다시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블랙파가 재기를 노리는 형세가 됐다.
수컷들의 권력다툼은 이런 식으로 `교통정리'가 끝났지만 암컷들의 암투는 여전히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화약고로 남아있었다.
지난번 1차전 때 승부를 가리지 못한 수지와 세라는 사파리 최강의 수컷을 `기둥서방'으로 삼겠다는 야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