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풍속사] (64)꽃뱀
기사입력 1998년 04월 05일 15시 19분
인터넷 문화비평잡지 `스키조' 97년 9월호를 보면 `백조 공주 혹은 퇴물 꽃뱀'이란 짧은 글이 실려 있다. `그녀에게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소시 적에 그녀는 매일밤 웨이터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물 좋은 일류 나이트 클럽들을 순회했다고 한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남자에게 까탈스럽기로 정평이 난 그녀와 부킹이 걸린 남자로서는, 그녀의 황홀한 자태와 간들어진 교태에 눈이 멀어 다음 코스에 대한 기대로 넋나간 표정을 짓고 있을 때면, 유유히 자리를 박차고 더 괜찮은 남자를 향해 떠나는 그녀의 변덕스런 태도에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재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음탕한 상상이 지불하게 되어 있는 엄청난 대가로 인해 속깨나 쓰렸을 것이다. 그들은 그년을 꽃뱀이라 불렀다. 뼈도 못추릴 맹독을 품고 있는….'
글은 다시 퇴물 꽃뱀이 된 주인공을 쫓아 두번째 장으로 넘어간다.
`그녀는 아직도 잘 나간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는 유혹의 세계에 적응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티는 노련한 화장발만으로는 온전히 커버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녀는 한창 때처럼 몸을 함부로 놀릴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화장발이 아무리 교묘해도, 몸매 유지를 위해 스스로 아무리 엄격해도, 나이든 여자는 몸단속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도 꽃뱀의 생리와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면 이제는 신중히 가려서 물어야 한다.'
글은 이제 `아무도 눈치 못채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여러 남자들을 부려 먹거나 등쳐 먹는 일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라며 퇴물 꽃뱀의 몇가지 생존 전략을 정리해 준다. `세심한 배려와 꼼꼼한 스케줄 관리, 적절한 타이밍 구사, 효율적인 신경전 수행, 자기 감정 통제 등'이 그것이다.
이 가상의 글이 무색하게 배짱 좋은 퇴물 꽃뱀이 며칠전 덜미를 잡혔다.
금정경찰서는 지난달 31일 70대 노인과 정을 통한 뒤 부인에게 폭로하겠다며 협박, 금품을 뜯은 늙은 꽃뱀 임모 여인（53）을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임여인은 90년 8월 이모 노인（70）에게 접근, 관계를 맺은 뒤 부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최근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2억 6천여만원을 뜯었다고 한다.
임여인은 이밖에도 70대 고령의 여러 노인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해 왔다고 하니 젊은 꽃뱀 저리가라고 할 실력을 발휘한 셈이다.
용문산 어느 뱀탕집 가마솥 위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다.
`주의！ 꽃뱀은 살이 연해 부드럽지만 탕으로 끓일 땐 무서운 초록빛을 띤다. 잘못 끓이면 구토 증세가 나고 쓴맛이 난다. 가능한 한 껍질을 완전히 벗기고 물로 잘 씻어야 독을 피할 수 있다. 꽃뱀은 그 맹독성으로 특히 주의를 요한다.'
이 경고문을 이모 할아버지가 진작 읽으셨다라면 패가망신은 하지 않았을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