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씨] 여자로 태어난 죄인 70년 굴곡의 '인생사'
기사입력 1998년 04월 05일 15시 19분
이경자씨가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전2권．실천문학사)를 내놓았다. 그의 이전 작품들처럼 역시 페미니즘이 주제다. 그러나 이번 소설은 일부에서 `도식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따뜻하다. 그런 따뜻함에 대해 작가는 "내 나이가 내게 준 귀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제 50세다.
소설의 무대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강원도 양양이다.
1932년 양양 물갑리, 일곱살된 정옥은 하나뿐인 아들인 오빠를 끔찍히 여기는 얼금뱅이 어머니의 편애속에서 자란다. 그 똑똑한 오빠가 죽자 어머니는 충격을 받는다. 정옥과 자매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밥만 축내는 지즈바 간난 나가 뒈져야 한다.
귀한 밥 멕여 키워봤자 남 좋은 일 시킨다'는 어머니의 욕설을 먹고 자란다. 정옥은 결혼을 하고, 그런대로 행복한 신혼을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폭력에 고통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의 시도때도 없는 불륜….
작가는 70여년에 걸친 긴 세월, 여자로 태어난 죄인의 기록을 힘겹게 이어간다.
작가의 이전 페미니즘 소설들이 도식적이라는 이유로 박수를 보류했던 독자들은 이제 손을 올려도 좋을 듯싶다.
박완서같은 선배작가도 "그는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페미니즘작가라 불리는 작가군에 속하고, 그로 말미암아 칭찬받은 것보다 야유나 무시를 당한 경우가 더 많았지 않았나싶다.
나도 어떤 부분에는 동의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 목소리 높음과, 너무 겉으로 드러난 의도 때문에 식상한 적도 없지 않다. 그가 페미니즘 소설의 범주 안에서도 성공적으로 변신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묘사를 뛰어넘어 마침내 감춰진 진실묘사에 이르렀다는 뜻을 함축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이경자씨는 `반페미니즘 소설'인 `선택'을 발표한 이문열씨와 한판 공방을 벌였다. `사랑과 상처'는 그 연장선상에 있고, 그러므로 작가의 답사(答辭)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대화속에 사용되고 있는 강원도 사투리가 타지인들에게는 퍽 인상적이다. 소설의 아무곳을 펼쳐도 `어여 가봐. 어머이가 여북 반굽겠너. 반구워 매렌이 읍슬긴데 뭐'같은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 소설의 또다른 재미다.
[이승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