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들] 사활건 '퇴직금' 쟁탈전
기사입력 1998년 04월 03일 14시 47분
`퇴직금을 잡아라'.
은행과 투신사 등 금융기관들이 회사마다 쏟아내는 `신인 퇴직자'들의 퇴직금 유치를 위한 전쟁에 한창이다.
최근 서울 중심가의 A사가 퇴직위로금을 넉넉하게 주며 우대퇴직제를 실시하자 거래은행인 Z은행 광화문지점에 비상이 걸렸다.
적어도 수십억원의 퇴직금이 일단 입금되는 `찬스'를 맞았기 때문이다.
지점 행원가운데 입심좋은 사람을 6명 골라 `퇴직자 상담원'을 선발하고, 퇴직자가 돈을 찾으러 오면 "다른 금융기관보다 우리 은행에 맡기면 훨씬 많이 불려준다"고 설득해 짭짤한 예금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말'로만 되는 일은 없다.
지점마다 `흥정'을 하다가 손님을 놓칠 것같으면 본점 영업부에 긴급전화를 건다.
정해진 이율보다 더높은 이율을 주겠다는 `네고금리'를 허락받기 위한 것이다.
예금액과 예치기간에 따라 연리 0.5∼2％를 더 주기도 한다.
B은행 본점 영업부 최모 대리는 "은행 자금이 모자랄 때는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정해진 이율보다 더높은 이자를 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은행은 아예 본점에서 허락받은 높은 금리와 담당직원 이름이 적힌 인쇄물을 찍어 퇴직자가 생긴 회사로 쳐들어가기도 한다.
이자 뿐만 아니다.
H투자신탁은 1억원이상의 고액거래를 하는 VIP에게는 최고 1억원까지 교통상해보험을 무료로 가입시켜 주고, 연간 평균잔액이 2천만원이 넘는 고객에게는 수영장, 사우나, 헬스클럽 등 휴양시설과 휴양지 숙박권을 덤으로 얹어주며 퇴직금 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최근 억대가 넘는 우대퇴직금을 받은 N씨（54）는 "퇴직 자체는 서럽지만 금융기관마다 정말 우대를 해주겠다고 해서 혼란스러웠다"며 "내 생애 마지막 쥔 돈인 만큼 철저히 따져보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리해고가 본격적으로 실시돼 회사마다 퇴직자들이 무더기로 생기면 금융기관의 `퇴직금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금융기관이 예금을 늘리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퇴직금 유치는 `사운（社運）'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에서 8％로 돼 있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은행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 때문에 대출을 억제하고 예금고를 올려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결국 금고에 돈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가뭄의 단비'인 퇴직금을 놓고 `물꼬 싸움'을 계속 벌일 것으로 보인다.
[김승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