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겉다르고 속다른 상점는다
기사입력 1998년 03월 30일 14시 10분
`간판따로, 장사따로.'
IMF한파로 인해 파산한 업체가 늘면서 상호와는 전혀 다른 장사를 하는 상점들이 늘고 있다.
`의류할인점' 간판을 걸어놓고 오락기계를 빼곡히 차려놓은 서울 종로의 컴퓨터게임룸, 유명의류 상표의 간판아래 벌여놓은 성북구 종암동의 속옷가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송파구 문정동 주택가의 한 옷가게 상호도 `전자제품 대리점'이다.
강남역 근처의 어떤 빌딩에는 이미 문을 닫은 한 여행사의 간판이 전성기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어 서글픔을 더해준다.
이밖에 강남구 학동에는 옷을 파는 `수입차 전시장'도 있다.
이쯤되니 가끔씩 소비자들이 낭패를 당하는 일도 생긴다.
버스타고 지나가다가 봐둔 의류할인매장을 마음먹고 찾아갔다가 난데없이 컴퓨터매장으로 들어선다든가 책사러 갔다가 분식점 아주머니의 환대를 받는 경우가 그것이다.
간판정리가 안되는 이유도 여러가지다.
갑작스런 부도로 인해 간판을 미처 떼지 못한 경우도 있고, 철거작업에 돈이 만만찮게 들기 때문에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해 옷가게를 정리한 강남의 김모씨（44）는 "망해 나가는 판에 간판떼고 뭐 치우고 할 정신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가게주인이 바뀌면 간판철거가 불가피하다.
바뀐 업종에 맞는 새로운 간판을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출발하는 업주들 역시 목돈이 든다는 이유로 간판제작을 꺼리는 경향이 짙다.
`간판따로 장사따로' 상점이 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그 상점들이 사업자등록도 하지않고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거창하게 간판을 내거는 대신 쇼윈도나 출입문에다 상호와 선전문구를 새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