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24)

기사입력 1998년 03월 29일 15시 38분


하무드가 말을 이었다.

"그중 아랍인 한 명은 내가 압니다. 사고가 나기 열흘쯤 전에 그자는 룩소르에 관광온 미국 영화배우 존 데일리를 취재하러 왔었으니까."

"그럼 그자가 기자란 말이오?"

이준석이 묻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존 데일리는 내 손님이었지요. 그자가 어떻게나 귀찮게 따라오는지 나하고도 싸울뻔 했습니다."

"이름은?"

"왈리드라고 했습니다. 카이로 신문 기자증을 나도 보았으니 틀림없습니다."

"왈리드와 다른 두 사람은 일행 이었나요?"

이번에는 요시에가 물었다.

"그렇게 보였습니다."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세요?"

"서양인은 큰 체격에 머리숱이 적었다는것 밖에는 40대쯤으로 보였습니다."

요시에가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초조해진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준석이 다시 물었다.

"하무드, 당신한테 압력을 넣은 사람들은 누구요?"

"별놈들이 다 왔습니다."

하무드가 분하다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집트 정보국 사람들은 CIA와 모사드에서 날 노리고 있다고 했고 어느날은 CIA 요원이란 사람이 와서 회교원리주의 특수부대가 날 죽인다는 거요."

"그들한테 왈리드 이야기를 했습니까?"

"내가 어린아인줄 압니까?"

쓴웃음을 지은 하무드가 머리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자들한테 내가 목격한 것을 말해주는 순간에 나는 죽은 목숨이 된다는것쯤은 압니다."

"그 세사람이 폭탄을 장치 했다고 생각하시오?"

"폭탄이 터진 다음 순간에 나는 그자들을 보았지요. 그자들이 내린 다음 일분도 지나지 않아 버스가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자들은."

하무드가 다시 입술끝을 올리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폭발 장면을 보고 놀라 서 있는데 그자들은 재빨리 호텔 안으로 들어가더란 말입니다."

"고맙소. 하무드."

이준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몸조심 하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친구."

하무드는 달러가 든 주머니를 두드려 보였다.

"이 돈으로 일년은 놀고 먹습니다."

단층집을 나온 이준석과 요시에는 다시 미로같은 골목길을 걸어 나갔다.

핫산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으므로 둘이서 큰 길을 찾아야만 했다.

뒤를 따르는 요시에는 시선을 내린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겨우 큰 길의 소음이 들리는 곳까지 왔을때 요시에가 앞서가는 이준석의 옷깃을 잡았다.

"좀 쉬어요. 피곤해요."

"이근처에 아는 호텔이 있소?"

"민박을 하는 것이 나아요. 호텔에는 정보요원들이."

이준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이 핫산의 집과 다를것이 없는 아랍식 단층집에 방을 잡은것은 정오가 될 무렵이었다.

방은 넓었고 그늘져 시원했지만 바닥에 낡은 양탄자가 깔려 있을뿐 가구라고는 재떨이도 없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요시에는 배낭을 머리에 받치고 모로 누웠다.

그리고는 가볍게 앓는 소리를 뱉더니만 곧 고른 숨 소리를 냈다. 긴장속의 긴 여행에 지친 것이다.

이준석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주머니에 든 베레타를 꺼내 쥐었다.

그러자 가슴이 든든해졌다. 믿을건 이놈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