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서능욱 9단●강 훈9단
기사입력 1998년 03월 27일 16시 36분
제9보(150∼200)＝이 판은 유리한 바둑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긴 바둑속담에 `불리한 바둑을 역전시키기 보다 유리한 바둑을 지켜내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
풀어 해석하면 불리한 쪽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집요하게 역전의 빌미를 찾지만 유리한 쪽에선 거꾸로 가능한 분규와 변화없이 이기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것은 양보하고 쉬운 길만을 택하려는 것이 부자(富者)의 심리인 것.
때론 `부자 몸조심'이 승리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형세판단과 심안을 흐리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인 것이다.
백 50도 `부자 몸조심'의 일환. 프로들은 이런 수를 `추위를 탔다'는 표현을 쓴다. 그도 그럴 것이 백은 73의 곳을 끊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는 대수롭지도 않게 여길 좌중앙 백 말의 안위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 모습.
결코 잡힐 말이 아닌 대마이건만 혹시라도 중앙에 악영향을 끼치기 싫어 백은 50으로 받아둔 것이며 그만큼 형세가 넉넉해 떨고 있다는 방증이다.
어쨌든 흑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51로 집요한 공격을 계속한다. 수순 중 백 66도 추위를 탄 수. 평소 서 9단 같았으면 무조건 69에 단수쳐 흑 `가'면 패를 감행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백 72가 결정적인 판단미스. 지금이라도 73에 이었어야 했다. 백은 흑이 뭔가 받아줄 것을 기대한 모양이지만 흑이 싹싹하게 손빼고 73으로 끊어오니 여기서 대번에 역전무드다.
백 74 이하 80까지는 72의 체면을 살린 내친걸음. 백이 중앙에 후수로 흑 두점을 잡는 사이 흑은 또다시 81로 반상최대의 곳을 끊어오니 흑의 우세가 확연해지고 있다.
다시말해 흑이 73, 81로 두곳의 큰 끝내기를 하는 동안 백은 중앙에서 흑 두점을 잡기에 연연했다는 얘기다. 이래서는 아무래도 백으로선 실리상 손해가 너무 컸다.
백이 중앙에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승부는 순식간에 흑 쪽으로 기운 셈인데 재밌는 것은 우세해진 흑이 지금부턴 완착을 연발하고 있다는 것. 그 첫째가 흑 93. `나'로 젖히거나 아예 94로 때려내는 것이 컸다.
[해설．김재구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