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2)이휘재 '개그클럽'
기사입력 1998년 03월 26일 15시 13분
서울예전에 진학하자마자 내 인생은 봄꽃처럼 피어났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개그클럽'의 공연을 보면서 다음날 동아리사무실로 달려갔다. "여기는 아무나 못들어와. 오디션을 통과해야 해."
사무실을 나서는 내게 던진 선배의 말은 쌀쌀 맞았다.
하지만 `개그클럽'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된 뒤 연극과 MT때였다. 여장을 하고 재주란 재주는 다 보여주었다. 선배들은 물론 동급생들까지 완전히 뒤로 넘어갔다.
숫기는 없었지만 고교때부터 마이클 잭슨 춤을 비롯, 소풍을 가면 친구들의 배꼽을 빼놓았던 실력이 어딜 가겠는가.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개그클럽'의 멤버였던 선배하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넌 개그클럽 특채야. 동아리사무실로 당장 뛰어와."
그 선배가 지금 MBC TV의 `허리케인블루' 김진수형이다. 1학년을 마치는 공연준비를 하면서 나는 갈림길에 섰다.
SBS TV가 `개그클럽' 출신인 표인봉 전창걸 신동엽 선배와 나를 스카우트 하겠다고 제의한 것이었다.
`할까 말까'. 매일 방송국에 나가야 하기때문에 기말공연 점수는 F를 각오해야 했다.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 신동엽선배가 TV에 무차별로 등장하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하지만 기회는 머지않아 다시 찾아왔다.
1학기를 마친 뒤 군입대 준비를 하며 소일거리로 동아리방을 드나들고 있을 때였다.
MBC TV에서 `개그 아이디어맨'을 구한다고 했다.
할 일도 없고 해서 김한석과 둘이 응시했다. 주철환PD와의 면담 자리에서 난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처음으로 내꿈을 말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FD도 하며 간간이 엑스트라로 출연했는데 한차례 화끈한 단역을 맡았던 게 내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가수 김종서형이 파마를 하고 있는 미용실에 강도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양파자루를 뒤집어 쓰고 총을 들고 들어가 유리고 의자고 마구 때려 부수는 장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치게 했다. 그후 종서형의 꿈에 일주일 동안이나 내가 나타났다니 말이다.
나중에 난 `오늘은 좋은날'이란 프로에 첫 고정출연하게 되는데 미장원 신에서 감독님께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단역으로 TV에 얼굴을 내밀면서 FD일은 여전히 계속했다. 하지만 말이 FD지 잔심부름꾼이나 다름이 없었다.
서글프고 처량한 생각에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