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21)

기사입력 1998년 03월 25일 15시 22분


"아버지는 독일에서 컴퓨터 공학을 연구 하셨어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요시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군터 박사는 아버지의 조수였고. 그런데 지난번에 그들은 항공기에 적용되는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을 발명하신것 같아요."

이미 날은 밝아 있었지만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고물 벤츠 택시는 속력을 내어 황량한 사막길을 서쪽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아버지의 헤이든 연구소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동쪽에서도 연구자금을 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K_7 시스템을 가져가려고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입니까?"

이준석이 묻자 요시에가 힐끔 운전사에게 시선을 주고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

"상대방의 컴퓨터로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기능이죠. 아버지는 우연히 그것을 발명하신 거예요."

"…."

"특히 비행물체에 장착된 컴퓨터가 기능을 잃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날으는 고철 덩어리가 되겠죠."

아연한 표정의 이준석을 향해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와 군터박사는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어느쪽에도 줄 수가 없었고 두렵다고까지 하셨지요."

"…."

"아버지는 결국 그것을 파기 시켰습니다. 그것이 반년전입니다."

"그런데 룩소르에는 왜 가신겁니까?"

"오랜만에 휴가를 가신거죠."

"그런 당신은 왜 이곳에 왔습니까? 이번 일이 그 시스템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사건이 나기 이틀전에 아버지는 저한테 전화를 하셨습니다. 속았다고 하시면서 빨리 오라고만 하고는 전화를 끊더군요. 그래서."

"…."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 하는 수 밖에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창으로 시선을 돌린 요시에가 가늘고 긴 숨을 뱉었다.

"분해요. 아버지는 평생 연구만 하신 분으로 욕심도 없는 분이셨어요. 누군가가 아버지와 군터박사를 버스폭파로 살해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40명이 넘는 관광객까지 같이 폭사했다. 그리고 오경미는 아직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차 안에는 한동안 엔진 소리만 울렸다. 이윽고 이준석이 입을 열었다.

"이집트 정보당국은 말할것도 없고 다른 정보기관에서도 당신과 나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어요. 무언가 흑막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커요."

머리를 돌린 요시에가 그를 바라보았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볼에는 조금 붉은기가 떠 있었다.

"당신과 제가 상대하기에는요. 그렇죠?"

"난 꼭 내 여자를 찾을거요."

시선을 돌린 이준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코 이대로 돌아가지는 않을거요."

이미 살해범으로 지명수배가 된 몸이다. 더구나 버트까지 달아난 상태여서 함정에 빠져 들었다.

"우선 하무드를 만나 봅시다."

이준석이 말하자 정신이 난듯 요시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사람의 위치는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의자의 등받이에 상반신을 기댔다.

"하지만 파이즈를 죽인 사람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