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서능욱 9단●강 훈 9단
기사입력 1998년 03월 23일 14시 49분
제5보(68∼87)＝앞서 정대상 7단의 대국을 소개할 때 `속기파'의 특성에 관해서 대략 언급한 바 있다. 서 9단 역시 속기파의 대표적인 기사. 그의 넘치는 재주와 탁월한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상 위의 착점들이 워낙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다보니 그의 닉네임이 `손오공'이다.
그러나 그도 예외없이 속기파의 단점, 즉 감각이 앞서거나 손이 먼저 나가는 버릇때문에 `덜컥수'의 빈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런 단점을 고치기 위해 그가 입신의 경지(9단)에 오른 90년 당시 한때 삭발을 하며 대국 때마다 염주를 굴리며 마음을 가다듬는 노력과 수련을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끼'는 그런 후천적인 노력으로 고쳐지거나 제어되지 않는 모양이다. 승부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런 차원을 떠나 반상 위에서 만큼은 한없이 자유롭고, 제약이 없고, 간섭받기 싫으며, 마음껏 날고 싶은 것이 서 9단의 본능인 것을….
백 68로 보강하자 좌변을 보기좋게 파괴한 백의 포석성공, 국면은 소강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백 70으로 또한번 분규가 인다. 69와 70을 맞보기로 보고 있던 서 9단으로서는 백 70에 주저함이 없어 보였지만 예의 그 감각적 판단이다.
68까지 좌변에서 한껏 득을 본 백인 만큼 보다 대국적인 형세판단이 필요했다. 즉 `가'정도로 지켜놓고 국면을 관망하는 것이 유연했던 것.
그러나 흑 73이 무심의 한수. 백이 `나'로 젖혀 사는 것만 예상한 것이나 그렇게 싱겁게 두어올 서 9단이 아닌 것.
백 74가 흑의 의표를 찌른 역습으로 77까지 패가 불가피해졌다. 흑 73으로는 [참고도] 흑 1．3으로 6까지 귀의 백을 싹싹하게 살려주고 9까지 상하 백말을 가르면서 국면의 주도권을 쥘 절호의 찬스였던 것인데 아쉽다. 80．86＝70, 83＝77의 곳.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