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9)

기사입력 1998년 03월 23일 14시 49분


버트가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대위, 넌 내가 없으면 이집트 안에서 꼼짝도 못할 것이다. 자, 권총을 이리내."

그가 손을 내민 순간 요란한 총성이 울렸고 버트는 흠칫 손을 내렸다. 이준석이 따라 웃었다.

"가랑이 사이가 후끈하지 않더냐? 총알이 그 사이로 지나 갔거든."

"개자식."

버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넌 내가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았어. 이 망할 놈아."

"미끼로 살려두었던거지. 낚싯밥으로 말이다."

이준석의 총구가 버트의 이마를 겨눴다.

"자, 네 몸에 있는 물건들을 다 내놓아. 우선 그것부터 조사 해야겠다."

흘끗 이준석에게 시선을 주었던 버트가 주머니에 든 물건들을 꺼내 모래 위로 던졌다.

요시에가 그것을 주어 모았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 네 말대로 널 이곳에 두고 가는 수밖에."

"넌 나를 죽이지 못해. 대위."

허리에 두 팔을 얹은 버트가 똑바로 이준석을 바라 보았다.

"넌 이유없이 살인 할 인간이 아니다."

"이유가 있어요."

소리치듯 말하며 나선 것이 요시에였다.

트럭의 테일 라이트 밑에 쪼그리고 앉아 버트의 지갑을 뒤져보던 그녀가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저자는 요르단인 신분증을 갖고 있어요. 이름은 카밀 타카, 주소는 암만 입니다."

"첩보요원은 여러개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버트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시선이 빠르게 이준석을 스치고 지났다.

"내 위조 신분증의 하나일 뿐이야."

요시에가 다가와 이준석의 옆에 섰다.

손에는 버트의 가방에서 꺼낸 달러뭉치를 들고 있었다. 3만∼4만달러는 되어 보이는 거금이다.

"이것봐요. 돈이 이렇게 많아요."

"무릎을 꿇어라. 버트."

이준석이 총구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널 데려가겠다. 확인한 다음 네가 CIA요원이 아니면 없앤다."

어금니를 문 버트가 총구를 노려본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빈틈을 찾지마. 버트, 너쯤은 맨손으로도 죽일만큼 난 단련 되었어."

"흥, 한국 해병대란 말이지."

"두 손을 앞으로 뻗고 엎드려. 두다리도 길게 뻗어라."

버트의 팔과 다리를 트럭에 있던 나일론 끈으로 묶은 이준석은 그를 들어 트럭의 짐칸에 던져 올렸다.

버트는 체중이 90㎏이 넘는 거구였다.

운전석에 앉은 그가 차를 발진시키자 옆자리에 앉은 요시에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한국 조사요원인가요?"

"…."

"한국인 실종자가 한사람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조사하러 왔나요?"

"그렇소."

마침내 이준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내 약혼자요."

순간 요시에의 눈이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정말이세요?"

"난 당신처럼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냐."

트럭은 밤길을 맹렬한 엔진음을 내며 달려나갔다.

한동안 앞쪽만 바라보던 요시에가 입을 열었다.

"하무드가 숨어 있는 주소를 알아요. 파이즈한테 3천달러를 주고 알아냈어요."

"…."

"하무드는 버스가 폭발하기 전에 버스에서 내린 아랍인을 알고 있다고 했대요."

흘끗 이준석을 바라본 요시에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