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8)

기사입력 1998년 03월 22일 18시 17분


잠자코 있는 이준석을 향해 요시에는 서두르듯 말했다.

"저자가 죽인 사람들이 CIA 였어요."

"어떻게 증명한단 말이오?"

"그 사람들이 미국 대사관에 연락하는 것을 들었어요."

모래언덕 사이로 버트의 모습이 보였으므로 그들은 말을 멈췄다.

다가선 버트의 시선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자, 가지. 서둘러야돼. 차가 발견되면 놈들이 곧 눈치 챌테니까."

도로가에 던져놓은 커다란 짐가방을 차 세대는 그냥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세번째로 지나갔던 트럭은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면서 멈춰서더니 곧 후진해 왔다.

운전사가 가방을 본 것이다.

모래밭에 나란히 엎드려 있던 버트가 이준석을 향해 흰이를 보이며 웃었다.

"여자가 서 있는것 보다 저것이 현실적이야."

트럭에서 운전사가 뛰어 내렸고 곧 가방을 들어 올렸는데 가방을 든 그가 운전석에 다시 올랐을 때는 버트가 이미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그가 손에 든 권총으로 운전사의 가슴을 찔렀다.

"움직이지 마！"

유창한 아랍어 였다. 그러나 콧수염이 무성한 이집트인 운전사가 뭐라고 소리친 순간 그는 권총의 손잡이로 운전사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이준석이 막 반대쪽 문으로 들어섰을 때는 다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운전사가 좌석 밑으로 엎어지는 중이었다.

핸들을 쥔 버트는 거칠게 트럭을 몰았다.

최고 속도를 냈지만 낡은 트럭은 시속 백키로미터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후르가다를 지나 세시간이 넘도록 잘 달렸다.

새벽 두시가 지났을때 버트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대위, 운전교대하지."

핸들에서 손을 뗀 그가 머리를 흔들었다.

"앞으로 두시간이면 수에즈에 닿을거야."

"엔진도 식혀야 할것 같은데."

이준석이 말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십분만 쉬었다 가지."

차에서 내린 그들은 제각기 굳어진 몸의 근육을 풀었다.

이준석의 옆으로 요시에가 다가와 섰다. 그녀는 자꾸 시선을 주었지만 이준석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트럭의 짐칸을 들여다본 버트가 이준석에게 소리쳤다.

운전사는 짐칸에 묶여져 있다.

"대위, 이놈을 끌어내."

"왜 그러는 거야?"

"여기다 버리고 가야겠어. 모래밭에 묻으면 몇십년이 지나도 찾지못해."

이준석이 다가가자 그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이봐. 수에즈에서 이놈을 풀어주면 금방 우리 행적이 탄로난단 말이야."

그 순간이다.

이준석이 버트의 한쪽팔을 쥐면서 뒤로 꺾어 올렸고 다른 한 손이 버트의 허리춤에 꽂힌 권총을 빼내 쥐었다.

그리고는 이준석이 힘껏 밀쳤으므로 버트는 모래밭에 얼굴을 박고 엎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얼굴에 붙은 모래를 털면서 버트가 모래밭에서 일어섰다.

"이봐. 대위, 왜 이러는 거야！"

그가 아우성치듯 소리치자 요시에가 이준석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섰다.

"넌 CIA가 아냐！ 이 살인자！"

이준석을 대신한듯 쨍쨍한 그녀의 목소리가 사막을 울렸다.

"넌 도대체 누구냐? 버트."

권총으로 버트를 겨눈 이준석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섬뜩했다.

"말하지 않으면 대신 너를 이곳에 묻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