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6)

기사입력 1998년 03월 19일 15시 26분


그러자 버트가 소리내어 웃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CIA를 사칭하는 놈들을 만날수가 있지. 그렇지 않소?"

힐끗 이준석을 바라본 그가 요시에에게 물었다.

"요시에씨, 그자들하고 어디를 가는 길이었습니까?"

"카이로."

"그자들을 어디서 만났지요?"

"신전 안에서."

"카이로까지 데려다 준다고 합디까?"

"그랬어요."

"당신은 가다가 홍해에 버려졌을거요. 그자들한테 파이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했습니까?"

"안했어요."

"다행이군. 그럼 나한테 말해 보실까?"

힐끗 백미러를 올려다본 버트가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봐요. 왜 그렇게 의심이 많습니까? 나는 강제로 당신 입을 열게 할 수도 있단말이오."

"난 이 사람을 믿을 수 없어요."

요시에가 손가락으로 이준석을 가리켰는데 앞에 앉은 둘은 못보았다.

그래서 일제히 머리를 돌렸다가 손가락이 이준석을 향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버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허어, 왜 그렇소?"

"파이즈를 먼저 만날수도 있었는데 나한테 보냈거든요. 당신들은 CIA가 아녜요."

"그렇소. 이사람은 CIA가 아니오."

차는 포트 사파가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버트가 짜증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CIA요원 버트 랜섬이오. 자, 말하시오."

"하무드는 버스가 폭발하기 직전에 버스에서 세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요."

요시에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런데 그중 아랍인 한사람이 낯이 익다고 했대요."

"그래서요?"

"누군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더군요."

"하무드는 어디에 있습니까?"

"두려워서 카이로에 숨었다고 했어요."

"어디로?"

"그건 모른다고 하던데요."

요시에가 버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CIA는 왜 이사건을 수사하지요?"

그러자 버트가 백미러로 그녀를 보았다.

"당신과 마찬가지 이유요. 요시에양."

"이젠 날 죽일건가요?"

"당신이 믿지 못한다는 앞쪽의 동양인에게 물어보시오."

오른쪽이 홍해였지만 어둠속이라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차들이 가끔씩 스쳐 지나고 있었으므로 버튼은 차의 속력을 줄였다.

이윽고 요시에가 이준석의 등에 대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이준석이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백불짜리 한장을 그녀에게 던졌다. 돈은 그녀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이돈 받고 입 다물어요."

버트는 영문을 몰랐으나 눈을 둥그렇게 떴고 요시에는 잠자코 돈을 집어 구겨진 부분을 문질러 폈다.

차 안은 다시 정적에 덮여졌다. 이준석은 앞쪽을 노려보았다.

버트와 요시에는 사건의 핵심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버스가 왜 폭발 했는지는 알고 있다.

앞쪽에 자동차의 붉은 테일 라이트가 수십개 모여 있는것이 보였다.

차의 속력을 줄인 버트가 이맛살을 지푸렸다.

"또 술취한 놈들의 사고인가?"

룩소르를 떠난지 두시간 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