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김종서(9)
기사입력 1998년 03월 19일 15시 26분
현철과 나는 유난히 궁합이 잘 맞았다. 내성적인 성격이 비슷했고 둘 다 무선조종 자동차와 비행기에 푹 빠져 있었다. 랩을 좋아한다는데서도 일치했다.
현철이 록 뮤지션으로는 어땠느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이 부분은 나와 대철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나는 현철만큼 섬세하고 뛰어난 베이시스트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철은 현철의 리듬감은 인정했지만 "필(느낌)이 엉망"이라며 `칼박똥필'이라는 처참한 평가를 내렸다. 자연히 사이도 나빠졌다. 대철은 현철이 건방지다고, 현철은 대철이 너무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완벽주의자인 대철은 현철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자 끝없이 연습을 시켰다. 지겨워서 외출했다가 오면 그때까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여태 하니"하고 물으니 씩 웃으며 "뒷부분은 자면서 쳤어요"라는 대답. 그런데도 박자는 `칼'이었다.
현철의 시나위 탈퇴는 정말 우발적으로 이뤄졌다. 어느날 대철은 현철에게 천원짜리 한장을 주며 담배를 사오라고 했다. 현철은 돈을 받아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 현철의 얘기는 "우리 아버지도 그런식으로 심부름 안 시킨다"는 거였다.
서로 쌓인 감정의 골이 깊어 그걸로 현철의 시나위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다. 물론 나머지 멤버들도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고 90년 연말, 밴드는 소리없이 해체됐다.
현철과 나는 그 뒤로도 수시로 어울렸다. 둘 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주로 하는건 비행기 날리기와 음악 듣기 정도였다. 어느날 현철의 집에 갔더니 미디가 설치돼 있었다. "심심해서 만들어 봤다"며 몇곡을 들려주는데 예상못한 댄스뮤직이었다.
"너 이런 것도 할줄 아냐?"고 했더니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 마이클 잭슨이라는 거였다. 그때부터 둘이서 랩 연습을 많이 했다. 나중 내가 `타락천사'를 발표했을때 "랩을 서태지가 해줬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나도 랩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주노 양현석을 만난 현철은 이름을 서태지로 바꾸고 녹음을 시작했고 그 뒤의 일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다. 나도 91년, 제작자 강승호 형(현 캔기획 대표)을 만나며 솔로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승철의 성공 이후 록그룹의 보컬들이 수없이 솔로로 데뷔했지만 내게 제의가 온 것은 이때가 정말 처음이었다. 제작자들 사이에 내 얘기가 오가긴 했지만 "가요쪽으로 오지도 않을 것이고 와도 대중성이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로 화려하게 등장했고 나도 `대답없는 너'로 제법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내게 쏟아진 것은 칭찬뿐만은 아니었다. "록을 배반하고 돈에 팔렸다"는 비난도 거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