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세상] '삶의 활력소' 야구시즌 왔다
기사입력 1998년 03월 18일 15시 17분
언젠가 최진실씨가 이런 말을 했다.
"프로야구시즌이 끝나면 나를 동네북 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라고.
사실 스포츠신문은 물론이고 일반 신문의 스포츠면 역시 프로야구가 없으면 정말이지 달콤한 통단팥이 빠진 단팥빵 같다.
솔직히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는 동안 스포츠신문은 재미가 없다.
온통 연예인의 가십일색이다.
물론 그 수많은 겨울경기와 배구, 농구, 축구 다 있으나 그래도 신문에서 읽는 맛이 있는 스포츠는 역시 야구밖에 없다.
다른 스포츠를 하는 분들은 섭섭해하겠지만 나는 스포츠신문에서 야구경기 기사외에는 잘 읽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스포츠는 너무나 쉽다.
그냥 보면 다 알고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구경 잘했다'하고 훌훌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미련도 없고 더 생각도 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열렬한 축구팬들은 '왕년의 바로 그 장면！'하면서 골키퍼가 차준 골을 아무개가 절묘하게 뒤로 패스를 해서 다시 넣었다고 침을 튀기며 말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래서요?'할 뿐이다.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고 하는 농구경기 역시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 나는 마치 그 옛날의 고종황제처럼 '저 힘든 것을 왜 하나'할 때가 많다.
물론 3점슛에 최근에 급격히 늘어난 미남선수들, 나도 한번쯤은 꼭 해봤으면 싶은 치어리더(내 친구에게 말했더니 용모는 받쳐주는데 체격이 못따라간다고 좋은 말 할때 단념하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물건너 온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셔 보는 재미는 있다.
그렇지만 보고나면 남는 것이 없다.
단지 몇 대 몇이라는 스코어만이 쓸쓸하게 남는다.
그렇지만 야구는 다르다.
나는 야구경기의 재미를 보물찾기에 비유한다.
우리는 어디에 어떤 보물이 묻혀있는지 그 지도를 갖고 있다.
그 지도란 야구의 절묘하고 무궁무진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룰이다.
야구의 룰을 하나씩 둘씩 알고, 게다가 '감독의 예술'이자 '두뇌있는 선수들'(나는 솔직히 남자의 얼굴보다는 두뇌를 더 사랑한다)이 열심히 머리 굴려 짜고하는 이 게임은 보는 내내 짜릿한 흥분으로 내 시간을 뺏는다.
야구는 사랑으로 치자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아무 장애없이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재미있는 만남이 아니라 사람의 가슴과 머리를 총동원하게 만드는 그런 미련투성이의 '불륜'과도 같은 사랑이다.
프로야구 시즌이면 나는 일산에 있는 집으로 가는 퇴근길 차안에서 라디오 중계를 많이 듣는다.
그때는 황혼이다.
해가 지는 그 아스라한 저녁길에 나는 삶의 활기를 재확인한다.
게다가 다음 날은 스포츠신문의 해설기사를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왜 아무개 선수가 왜 그렇게 던졌지 하는 초보생의 의문을 남김없이 풀어버린다.
나는 그 때마다 치매에는 절대로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되어도 프로야구경기가 열린 다음날 스포츠 신문을 읽어가며 열심히 경기를 복기하면서 머리를 쓸테니까.
프로야구가 시작되면 사실 나는 최진실씨보다도 더 기쁘다.
[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