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톡톡튀는 IMF명함
기사입력 1998년 03월 18일 15시 17분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명함.
대부분의 명함은 종이질이나 모양, 인쇄상태 등이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이름과 직함, 그리고 연락처가 전부인 것.
그러나 혹독한 IMF시대를 맞아 '톡톡 튀는 아이디어맨'들은 한귀퉁이에 다양한 글귀를 적은 이른바 'IMF 명함'을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IMF한파로 어깨가 축 늘어진 직장인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당신의 성공을 기원하며', '용기를 잃으면 세상을 잃습니다'는 격려문을 비롯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을 감고 보아야 한다'는 뜻깊은 글귀 등을 적어 받는 사람이 잠시나마 흐뭇한 시간을 갖도록 한다.
특히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함께 손잡고 IMF를 이깁시다' 'IMF는 위기가 아닙니다. 기회입니다'라는 IMF와 관련된 구호형 문구도 등장했다.
또 일부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십분발휘한 '개성파 명함'을 사용하고 있다.
학창시절 아마추어 통기타 가수로 활약했던 황모씨(38)는 '유리알같이 맑은 아침처럼, 이슬을 좋아하는 마음처럼,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는 아름다운 노랫말을 써넣어 주위로부터 "인상깊은 명함"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문학도 출신들은 소설책 주인공들의 인상적인 대사를 애용하기도 하는데 H자동차 영업사원인 김모씨(32)는 '꼭 연락해달라'는 의미에서 고려가요 '가시리'에 등장하는 '가시는듯 돌아오쇼셔'라는 문구를 적은 명함을 찍었다.
'IMF 명함'이 시중에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양한 직업인을 만나는 영업사원이나 보험설계사 등은 자신을 최대한 홍보하면서 동시에 고객으로부터 '천대'를 받지 않는 색다른 명함이 필요했던 것.
서울 영등포에서 명함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51)는 "글귀를 넣어달라는 주문이 많아 요즘에는 아예 아름다운 문장이나 덕담을 모은 책자를 준비해놓고 있다"면서 "어느 보험설계사가 주문한 '나를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는 글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IMF 명함'을 즐겨 쓰기는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등 분위기를 강조하는 업소도 마찬가지.
서울 광화문의 커피숍 '라트'는 명함에 '은은한 커피향속에 편안함과 감미로운 음악이 여유를 주는 곳, 늘 여러분 곁에 함께 합니다'는 카피를 적고 있다.
주인 김준씨는 "간단한 문장이지만 이 문구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자랑했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