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정대상 7단●안영길 초단
기사입력 1998년 03월 17일 14시 42분
총보(1∼225)＝입단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가 입단하자마자 18연승의 대기록을 세운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래서 바둑계는 안 초단을 두고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이창호의 대를 이을 재목이라는 성급한(?) 낙관적 견해와 어디까지나 일시적 반짝임이라는 냉정파의 의견이 그것인데 물론 아직 어떤 결혼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무서운 신예들이 우글거리는 현재의 바둑계에서 그의 이름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의 연승행진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때가서 안 초단에 대한 시각과 평은 다시금 새로워 질 것임엔 틀림없다.
이 판은 초반 백 34, 36의 성급한 젖혀이음으로 흐름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급선회한다. 43으로 받아줄 것이라는 백의 기대와는 달리 흑은 37로 주문을 거부했고, 그런 이상 38 이하 프로의 기세가 맞붙어 초반 패싸움으로 판의 골격이 결정되어 갔다.
그런데 좌상귀 패를 보는 두 대국자의 안목은 서로 달랐고 그것이 이 판의 흐름을 결정했다. 즉 백은 오기상 이 패만큼은 이겨야겠다는 패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흑은 언제든지 `변신'할 마음으로 패에 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흑 61 때 나타났다. 백은 어디까지나 패를 이기기 위해 62로 따냈고 흑은 시기적절하게 63으로 변신을 취했다. 따라서 백은 64로 좌상귀를 잡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65까지 어느새 대세에 뒤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백 62로는 209에 때려내 좌상귀 패를 양보하고 하변 쪽을 선착해나가는 대국적인 안목이 아쉬웠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백의 결정적인 패착은 92 침투. 감각적으로 수가 나는 곳이라는 `일감'으로 감행한 이 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 97 이하 115까지 백은 거미줄에 걸린 먹이마냥 운명이 결정되고 말았다.
백 92로는 107의 곳에 뛰어두고 흑 100에 지킬 때 백 127의 곳을 차지해 갔으면 지금부터가 바둑이었다. 한번 찬스가 오자 전광석화같이 단숨에 승부를 결정지은 흑의 쾌승보. 47．55＝35, 50．62＝44, 154．160＝146, 157．210＝151의 자리 225수 끝, 흑 불계승.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