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4)

기사입력 1998년 03월 17일 14시 42분


"그 여자가 여기온 이유는 뭐요?"

이준석이 묻자 버트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여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낚시밥이었군."

"낚시밥이 뭐요?"

"낚시를 내리기 전에 고기가 모이라고 주변에 던지는 먹이오."

"한국식 낚시는 돈이 꽤 들겠소."

BMW는 시속 150㎞로 달려나갔다.

버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당돌한 여자요. 머리도 좋고, 게다가 미인이기도 하지."

그가 이준석을 향해 웃었다.

"대위도 겪어 보았지 않소?"

"난 그 여자가 돈이 많다는것 밖에 느낀 것이 없소."

"대위는 목석이군."

했다가 버트가 얼른 정정했다.

"실례했소. 대위가 약혼자를 찾아 왔다는 것을 잊었소."

버트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그 여자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가 30분쯤을 더 달렸을 때였다.

앞쪽에 희미한 붉은 빛이 보이더니 곧 그것이 자동차의 테일 라이트인 것이 드러났다.

버트가 긴장을 했고 이준석도 앞쪽에 시선을 집중했다.

"대위, 저 여자는 파이즈를 만나 목격자 하무드의 이야기를 들었을거요."

"…."

"나는 신전 안까지 그들을 미행했지만 둘을 모두 놓쳤소. 그리고 파이즈는 곧 시체로 발견되었지."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는지 버트는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떨어뜨렸다.

앞쪽 차와의 거리는 백여미터 정도였다.

"저 여자가 이쪽 길로 갈줄은 어떻게 알았소?"

"외곽도로로 빠져 나가는 곳에 정보원을 세워 두었지. 백불에 사례비를 백불 더주면 눈도 깜박이지 않소."

차가 조금더 접근했을때 이준석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앞쪽 차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차 안의 불은 껐지만 이쪽 라이트에 비췬 세 사람의 상반신이 분명히 드러났다.

버트가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정보요원들에게 연행되어 가는 중이오."

"…."

"여자를 빼앗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이오."

그러자 버트가 자신의 의자 밑에 손을 넣더니 묵직해 보이는 권총을 꺼내 들었다.

미군용으로 베레타 M9 15연발이다. 버트가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대위한테도 익숙한 권총 아니오?"

"쏠 작정이오?"

"그럼 정중히 여자를 넘겨달라고 요청해 볼까요?"

그리고는 놈들이 쏜 총에 맞을까요? 여자는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이쪽의 불빛이 가까워지자 힐끗 뒤를 돌아 보았으므로 그녀의 얼굴도 보였다.

거리가 이십미터 정도여서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우체국 앞에서 본 그 얼굴이다.

왼손으로 핸들을 쥔 버트는 핸들 위에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베레타의 슬라이더를 젖히고 약실에 실탄을 장전했다.

"놈들이 앞좌석에 앉아 다행이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앞쪽을 노려 보았다.

앞쪽 차와 나란히 붙은 순간 앞좌석의 사내들에게 쏘아갈길 작정인 것이다.

이준석은 어금니를 물었다. 우측 차선이어서 반대차선으로 들어간 후에 버트는 팔을 자신의 앞으로 뻗어 겨눠야만 할 위치에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