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7)김종서
기사입력 1998년 03월 17일 14시 42분
겨울을 그 연습실에서 나고 87년 봄을 맞았다. 한 겨울만 났으니 망정이지 더 살았으면 몇명쯤은 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굶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담배는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이면 후배들의 일과는 버스 정류장을 돌며 꽁초를 주워 오는데서 시작됐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버스가 오면 다들 급히 담배를 끄기 때문에 정류장 근처에는 `장초'가 많다. 그 무렵 둔촌동 일대의 길에 담배를 함부로 버린 분들은 한국 록 발전에 어느정도 기여를 하신 셈이다.
그 겨울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신윤철－오태호－손무현이라는 새로운 기타 트리오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태호는 뒷날 김현식의 `사랑했어요', 이승환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을 작곡했고 손무현은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만든 주인공이다. 신윤철은 앞서 말한 신대철의 동생.
신윤철과 오태호는 중2때부터 리자드(Lizard)라는 그룹을 결성, `공포의 트윈 기타'로 불렸다. 오태호는 고교생일때 이미 "잉베이 말름스틴과 똑같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손무현도 김태원에게 픽업돼 부활의 쌍두마차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오태호는 나중에 이승환과 듀엣 앨범 `이－오공감'을 내기도 했다. 이 얘기를 하니 생각나지만 이승환도 한때는 록 보컬이었다고 한다.
이승환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룹사운드 페스티벌에 출전했는데 정말 엄청난 고음의 보컬이 다른 그룹에 있었다. `아, 록 쪽으론 쟤때문에 안되겠구나' 싶어서 그날로 전공을 발라드로 바꿨다. 그게 바로 김종서였다"고 얘기하는걸 들은 적이 있다.
우스개로 한 얘기겠지만 그만큼 우리 세대의 음악 한다는 친구들 중엔 록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신대철은 임재범과 결별하고 다시 나를 찾았다. 시나위 2집은 나와 신대철, 김민기(드럼) 강기영(베이스)의 라인업에 `새가 되어 가리'를 타이틀로 했다.
내 이름을 달고 세상에 처음 나온 앨범이었다. 동남아 프로모터들이 찾아오기도 했고 앨범도 8만장이나 팔렸다.
87년 한해 내내 부활과 시나위, 그리고 백두산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국내에도 서서히 본격적인 댄스 음악이란 강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물론 록그룹들이 팬들을 실망시킨 것도 무시할수 없는 이유였다. 많은 그룹들이 인기와 함께 내분과 이합집산에 시달렸고 시나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대철과 다른 멤버들 사이의 갈등은 날로 심해졌고 나도 더 이상 중재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멤버들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