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김종서(6)
기사입력 1998년 03월 16일 15시 00분
86년. 부활은 양홍섭이 작곡한 `희야'를 앞세워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곡들이 담긴 1집을 냈고, 시나위도 `그대앞의 난 촛불이어라'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수록된 1집을 내놨다.
내가 시작한 두 그룹 모두 나를 빼놓고 앨범을 낸 것이다. 게다가 부활 1집은 20만장, 시나위 1집도 6만장이 팔려 나가며 히트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무렵 나는 이근형과 함께 `작은 하늘'이란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현재 그룹 김종서의 베이스를 맡은 김영진 형과 당시 여성 건반 주자로 유명했던 한송연 선배가 합류했다.
이근형의 어머니가 강동구 둔촌동에 내어 주신 연습실이 이 시절의 활동 무대. 20평 남짓한 이 연습실은 작은 하늘 멤버들 뿐만 아니라 특별한 소속이 없는 뮤지션들이 늘 들끓는 `소굴'이 돼 버렸다.
자주 드나들던 멤버들 중엔 삐삐 롱스타킹의 강기영, 드러머 이호규 등이 기억난다. 강기영은 한때 스머프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드러머는 신성일씨의 아들인 영화배우 강석현이었다.
내가 회계 비슷하게 살림을 맡았는데 무대에 서 봐야 버는 돈이라곤 차비 정도. 헤비메탈 붐을 맞아 음악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의 교습료로 근근이 방을 꾸려가야 했다.
대부분 고교생들이었는데 우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방과 후 오는 학생들에게 "도시락은 먹지 말고 갖고 오라"고 으름장을 놓아 먹기도 했다. `제자'들의 도시락으로 연명하는 선생들이라니, 정말 코미디가 아닐 수 없었다.
단독 공연을 해도 생기는 돈은 몇십만원 정도. 그 돈으로 연료와 쌀, 라면 등을 사 놔도 며칠을 버티지 못했다. 워낙 `빈대'들이 많았고 차라리 같이 굶으면 굶었지 오는 사람들을 내치지는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고 어떤 그룹 멤버는 하도 굶어 장에 구멍이 났다며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말은 안했지만 `치료비 낼 돈으로 미리 밥이나 잘 먹어 두지'하는 심정이었다.
한번은 이태원에서 공연을 마친 뒤 그날의 공연료를 받았는데 정말 차비 정도였다. 그래도 워낙 배가 고파 그 돈을 거둬 김밥이며 떡볶이를 배가 터지게 먹고 둔촌동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한남대교를 건널 때만 해도 기세가 등등했지만 워낙 추운 날씨였다. 잠실종합운동장을 지나면 큰 건물이 거의 없던 시절, 그 넓은 잠실벌에 몰아치는 바람속을 걸어가는데 다리에 힘이 빠지며 눈앞이 흐려왔다.
`드디어 얼어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뒤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비만은 꼭 챙겨 놓게 됐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