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이발사가 된 동양 그레이
기사입력 1998년 03월 16일 15시 00분
@…`농구공 대신 가위를 잡은 그레이.'
프로농구 동양의 외국인 가드 키이스 그레이（30）는 15일 저녁 대구체육관에서 훈련을 마친 뒤 숙소에 들러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작은 가방을 든 그가 향한 곳은 동양과의 플레이오프 준준결승을 위해 대구에 내려온 나래선수단이 머물고 있던 파크호텔.
주위가 캄캄해진 늦은 시간에 상대팀 숙소를 찾은 그레이는 `적과의 동침'이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물론 그건 아니었다. 다만 나래 용병 윌리포드의 머리를 깎아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14일 플레이오프 준준결승 3차전을 마치고 그레이는 나래에서 동양으로 이적한 이인규를 통해 윌리포드의 이발 부탁을 들었다.
흔쾌히 "오케이"한 그레이는 미국에서 가져온 도구를 사용, 윌리포드의 주문에 따라 능숙한 손놀림으로 멋진 `헤어쇼'를 펼쳤다.
고교시절 취미로 이발기술을 배웠다는 그레이의 실력은 수준급. 지난 90년 대학졸업후 그레이는 용병으로 세계 각국을 돌았고 그때마다 동료들의 머리손질을 도맡았다는 것.
이같은 재주는 지난해 USBL（미국농구리그） 랄리에서 함께 뛰던 데이비스（SBS）에 의해 한국에 온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금세 알려졌다.
팀동료 조던의 이발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고 보이킨스（LG）의 머리도 두차례 깎아주기도 했다.
그레이의 부인 울레타 역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종업원 2명과 함께 미장원을 꾸려나가고 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부부가 모두 헤어 드레서로 활약하고 있는 셈.
그레이의 손끝이 40분간 쉴새없이 움직였고 마침내 윌리포드는 깔끔하게 변한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거울에 비쳐보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봉사료를 묻는 주위의 질문에 그레이는 "친구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느냐. 나는 단지 이발을 즐길 뿐"이라며 총총히 호텔을 떠났다.
[대구＝김종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