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비화X파일] (2)쌍둥이 어음 위조단
기사입력 1998년 03월 16일 15시 00분
이들은 우선 범행 장소로 쓸 사무실에 `영동투자신탁'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위조된 주민등록증으로 삐삐와 핸드폰을 하나씩 장만했다.
또 위조된 주민등록증으로 할인금을 입금할 도명계좌도 개설했다.
수천만원을 들여 스지기, 스지판 필름, 어음감식기 및 형광환등기, 인쇄잉크, 고무판, 금액인쇄기, 삼각칼, 어음번호전산용지, 일부인 등 크고 작은 어음위조 장비 32종 119점도 사들였다.
범행은 어음 발행정보 수집, 어음용지의 매집, 수집된 어음 사본을 이용한 할인가능 여부 사전 탐지, 어음위조, 위조어음 할인 등의 순서로 진행했다.
먼저 어음용지 공급을 책임지기로 한 강성동（58．가명）이 딱지어음을 구해왔다.
어음발행 정보수집을 맡은 조창욱（44．가명）은 K회사에서 발행해 시중에 할인의뢰된 약속어음의 사본을 가져왔다.
어음위조는 수표나 어음의 번호를 용지에 구멍이 나지 않게 칼로 오려낸 뒤 어음 위에 갖다 붙이는 속칭 `눈깔박이'의 대가 박철호（47．가명）가 맡았다.
박철호는 강성동이 구해온 딱지어음에 적힌 액면가, 발행일, 지급일, 발행인 등을 잉크제거 약물로 지운 뒤 위조용 기구를 사용해 조창욱이 가져온 K회사의 어음사본과 똑같이 만들었다.
어음할인을 맡은 주영철（33．가명）은 이튿날 사채업자로부터 월 2.1％의 이자로 어음을 할인했다.
사채업자는 어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수표 어음검색기에 넣기도 하고, 이면에 적힌 배서회사로 전화를 걸어 확인까지 했으나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배서회사는 범인들이 만들어낸 가공회사였기 때문이다.
첫 범행으로 2억여원을 거머쥐게 된 범인들은 자신감을 얻고 액면가 1억원짜리 어음을 또다시 위조, 할인했다.
그러나 IMF 한파로 어음 할인이 어려워지자 미리 만든 쌍둥이 어음 5장을 써먹지 못하고 모두 찢어버려야했다.
어음 할인이 힘들다고 판단한 이들은 공사채 위조로 `업종변경'하기 위해 장비 6천여만원어치를 사들였으나 인쇄기를 한번 돌려보지도 못하고 붙잡혔다.
IMF로 사채시장이 경색되지 않았다면 수많은 쌍둥이 어음이 나돌아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관계자의 말이다. [끝]
[정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