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정] '몸매만 예쁜배우 이젠 안녕'

기사입력 1998년 03월 15일 15시 45분


`아휴, 그것도 연기냐? 어지간 해야지…. 미치고 펄쩍 뛰겠구만！'

이종수 PD는, 그러면서 대본을 집어 던졌다.

STV주말드라마 `부자유친' 촬영때의 한 삽화. 생짜배기 탤런트_`눈이 큰아이'는 울 수 밖에 없었다. `욕만 먹는 6개월'이 흘렀다.

이종수 PD는 `눈이 큰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연기, 엄청 늘었다. 수고했어." 이말에 `눈이 큰아이'는 또 울었다.

`눈이 큰아이'_탤런트 유혜정(柳惠靜．25).

"NG를 숱하게 냈으니, 공자라도 욕을 했을 거다. 이종수 PD는 그러나, 뒤끝이 없는, 아주 좋은 분이었다. 정도 많이 들었다. 이때, 욕먹은 만큼, 구박받은 만큼, 연기력이 좋아졌다. 그런 욕이라면, `영양가 만점' 아닌가?"

유혜정. 요즘 MTV 월화드라마 `사랑'에서 박세라로 출연중. 10부부터 투입됐다. 민석(정준호 분)의 파트너.

민석은 세라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아들. 회장 딸과의, 정략적 결혼으로 카오스에 빠진다. 사장아들과 회장딸. 민석은, 회장딸에게, `신분 콤플렉스'를 느낀다. 민석과 세라는,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악역인데, 표정연기가 까다롭다. 남자를 압도하는, 강력한 눈빛은 더욱…"

유혜정. 부산 태생. 1남2녀중 막내. 1m70, 46㎏. 운수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유년기는 이곳저곳으로 떠돌았다. 제주도로, 부산으로. 초등학교는 4곳을 다녔다.

부산 장전초등학교∼구서여중∼혜화여고∼서울 파리에스모드 2학년 휴학중.

패션디자이너가 꿈. 남성복 전공. 파리에스모드를 졸업후, 파리 본교로 유학 예정.

당장, 남성 정장은 만들 수 있는 수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옷도 만들겠단다.

"탤런트는, 꿈도 안꿨다. 파리에스모드 재학때 학교모델을 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패션 모델을 해라' `미인대회에 나가라'며 성화였다. 그래, 심심풀이 삼아 미스 유니버시티에 나갔다. 1위였다."

미스 유니버시티는 탤런트와 연결된다.

95년 2월. STV 드라마 `사랑은 블루'에 전격 스카우트된다. 미스 유니버시티 심사위원의 중개로.

뭐가 뭔지도 모른채 촬영장에 끌려 간다. 다이빙 선수역을 맡았다. `순수하면서 약간 푼수끼'가 있는 캐릭터. 운수대통인지, 아닌지…. 탈없이 넘어 갔다. 조연급이었는데, 대뜸 드라마 중반부에선 주연급으로 껑충 뛴다.

`야, 저런 애가, 어디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나? 몸매 하난, 정말 100만달러짜리다.'

여러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제의가 넘쳐 난다.

"연기랄 게 있나. 솔직히 말해, 수영복 몸매가, 꽤 괜찮았나 보다. 그뒤 출연한 드라마는 일부러 수영장면을, 나 때문에 만들어 넣기까지 했으니까."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든다. STV의 두드라마에 동시 출연제의가 온다. 그러나 방영 간격이 잇대있어 한 드라마만 택해야 했다.

`도시남녀'와 `부자유친'. 상대적으로 묵직한 `부자유친'을 택했다. 연기 욕심 때문에. 동성동본의 남자를 사랑하는, 비련의 역이었다. 눈물을 한말 쯤이나 흘렸다.

인터넷, PC에 비난(?)이 쏟아 졌다.

`나이에 걸맞은 역을 해라. 그 나이에, 눈물이나 질질짜는 청승맞은 역이라니！ 밝고 발랄한 역으로 바꿔라.'

이어 KTV 연말특집극 `끝의 시작'에 출연. 여기서도 비련의 역. 종전 `수영복 탤런트'에서 '눈물의 탤런트'로 별명이 격상한다.

"이상하다. 슬픈역이면 절로 눈물이 쏟아 진다. 하기야 길을 가다, 어깨가 꾸부정한 할아버지만 봐도 눈물이 나니까…."

그동안 MC도 했다.

MTV `도전, 추리특급' STV `깊은 밤, 전영호 쇼'와 `좋은 친구들'.

"재미가 쏠쏠했다. 관객과 함께 숨쉬고 대본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자유로웠다."

물론 실수도 있었다. `도전, 추리특급'에선 대본 내용을 곧잘 까먹어 식은땀께나 흘렸다. 이땐, 재빨리 베테랑 김국진, 김용만에게 대사를 떠넘기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한번은 된통 걸렸다.

"나, 프랑스말도 잘하고, 똑똑해요. 부에노스 노체스！(좋은 밤)…." 관객들도 무턱대고 박수를 쳤다. 잘 넘어 갔다.

그러나, 바로 그날 하이텔에 떴다.

`뭐가 똑똑하냐? 부에노스 노체스가 프랑스 말이라고? 천만에, 스페인말이야.'

유혜정. 밝고 낙천적이다.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아버지 대신 오빠와 함께 집안을 꾸린다. 수영과 골프를 즐긴다. 컴퓨터는 친구. 하루 4시간만 자도 끄떡없는 체력.

"아직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자상하고 순박한 남자가 좋다. 오빠같고, 아빠같은, 7∼8세쯤의 연상이면 더욱…."

[서병욱(부국장대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