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이경수 '효도스파이크' 투혼
기사입력 1998년 03월 13일 15시 26분
12일 밤 한양대 배구단 숙소 근처의 공중전화 박스.
몸이 훌쭉한 한 사내가 전화기를 붙들고 흐느끼고 있었다.
"엄마, 나 태극마크 달었어." "그래, 장하다. 경수야…."
최근 19세 국가대표로 화제를 모은 `제2의 강만수' 이경수（한양대 1년）.
대전 중앙중 시절 그는 한때 배구 혐오증에 빠졌었다.
"이럴 수가, 어머니가 배구공 때문에 실명을 하셨다니…."
친지로부터 어머니의 실명원인을 듣는 순간 그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어머니 김둘연씨（46）는 한양여고 시절 국가대표를 꿈꾸던 배구선수였다.
하지만 동료가 때린 강스파이크가 양눈에 맞으면서 그녀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6．25전쟁 와중에서 역시 앞을 못보게 된 아버지（이재원．55）와의 결혼, 남편과 함께 가계를 꾸려가야 하는 억척스런 삶….
"경수야, 어머니의 몫까지 네가 해주면 되잖아.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로 다시 일어선 이경수를 괴롭힌 것은 병마였다.
대전 중앙고 시절 매년 10㎝씩 키가 자라는 `고속 성장'을 겪으면서 그는 성장성 빈혈에 시달려야 했다.
네트 너머로 강타를 때려놓고 현기증을 느끼며 코트로 쓰러진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국가대표로 확정되던 날, 그가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흐느낀 것은 이같은 이중의 고통을 이겨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 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