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1)

기사입력 1998년 03월 13일 14시 07분


이준석이 끌려간 곳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 3층 빌딩이었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빌딩의 2층 방으로 들어서자 테이블에 앉은 사내가 머리를 들었다.

짧은 콧수염을 기른 마른 체격의 사내였다.

이준석을 플라스틱 의자에 앉게한 두 사내는 뒤쪽에 섰다. 테이블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대위, 카이로의 나일 힐튼을 빠져 나온 솜씨는 놀라웠소. 우리 멍청이 같은 요원들은 카이로 시내만 뒤지고 다녔다지 뭐요?"

그가 고르지 못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마 차로 이곳에 오신것 같은데 누구 도움을 받았습니까?"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해주시오. 대사관 직원이 오기 전에는 말하지 않겠소."

"한국 해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소."

"…."

"여행사에서 파이즈를 만나 무슨 말을 들었습니까?"

"…."

"대답을 안하실 모양인데."

사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말을 안하면 당신이 손해야. 대위, 파이즈는 당신을 만난 후에 신전 안의 구석에서 목이 부러진 시체로 발견 되었어. 당신은 지금 살인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는거야."

그러자 이준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난 여행사 직원 압둘라와 같이 있었어. 그리고 파이즈는."

문득 말을 그친 이준석은 일본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파이즈는 그 여자와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자들도 그 사실을 안다.

이준석을 찬찬히 바라보던 사내가 따라 웃었다.

"압둘라는 오늘 사무실 밖을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어. 대위."

"그럼 그자가 갖고있던 달러도 빼앗았겠군. 내가 600달러나 주었는데."

"제법 여유를 부리는데. 대위."

사내가 손을 권총처럼 만들더니 총구로 이준석의 얼굴을 겨눴다.

"너는 살인용의자로 이집트 국내법에 의해 경찰로 넘겨진다. 아마 잘되면 10년이고 운나쁘면 20년쯤 감옥에서 썩게 되겠지."

"그 일본여자를 감추는 이유는 뭐야?"

이준석이 사내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이 궁금한데. 상사."

퍼뜩 시선을 든 사내를 향해 이준석이 입술 끝을 들고 웃었다.

"당신은 내 부대의 창고에만 갇혀있는 보급계 상사를 닮았어."

"끌고가라."

사내가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더니 돌아 앉았고 뒤쪽의 두사내가 이준석의 어깨를 쥐었다.

그가 끌려간 곳은 빌딩 지하실의 창문도 없는 방이었다.

다행히 천장에 형광등 한개가 붙어 있어서 주위는 보였다.

방안에는 나무침대 한개와 분뇨통 하나만이 있는것이 꼭 감옥같았다.

침대에 걸터 앉은 이준석은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었다. 자신의 무력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측에서 철저하게 사건을 덮고 있다는 것은 확인이 되었다.

그것이 정부 당국인지 아니면 비밀 조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목격자까지 살해된 상황이다.

새벽부터 강행군을 한 터라 이준석은 벽에 기대 앉아 곧 잠이 들었다.

어떤 환경에서건 잠을 자도록 훈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퍼뜩 잠이 깼고 정신과 육체가 금방 새로워 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