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장외] 사령탑-선수간 '펑고내기'약속
기사입력 1998년 03월 12일 15시 33분
★…지난 10일 오키나와 고자구장.
사흘째 비가 내려 운동장은 완전히 진흙탕으로 변했다.
하늘을 원망하며 실내연습장으로 발길을 돌리던 삼성 선수들에게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비도 오는데 웬 집합?'
중얼거리며 운동장에 모여든 선수들에게 떨어진 과제는 `특수 수비훈련'.
첫번째로 야수 최고참 이순철이 지명됐다.
중견수 위치로 나간 이순철에게 내려진 명령은 펑고 100개.
그것도 정면으로 날아오는 타구는 단 한개도 없이 죄다 좌중간이나 우중간으로 빠지는 공을 잡아야 했다.
비를 쫄딱 맞으며 진흙탕 속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 100개를 다 받아내자 서정환감독의 불호령이 다시 날아들었다.
`10m앞에서 50개 더.'
말이 훈련이지 사실상 기합이었다.
최근 잇단 연습경기에서 무기력하게 연패를 하자 부아가 치민 서정환감독이 군기잡기에 나선 것.
초보감독에게 부족하기 쉬운 선수단 장악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도 곁들여졌다.
모든 훈련 일정을 생략한채 계속된 특별수비 훈련이 끝난 오후 4시, 모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다.
약이 올랐던지 주장 양준혁이 펑고를 때려주던 김동재 수비코치에게 한마디 건넸다.
"힘들어 죽겠습니다. 한번 바꿔서 해보죠."
"힘들긴 뭐가 힘들어. 니네들이 우승만 해봐, 얼마든지 해 줄테니까."
양준혁이 되받았다.
"정말 우승하면 저희가 때리는 펑고를 코칭스태프가 받는거죠?"
곁에 있던 서정환감독이 즉석에서 OK, 내기가 성립됐다.
뚜껑이 열릴 98년 10월.
삼성 선수들은 서정환감독을 뺑뺑이 돌릴 야심찬 꿈에 부풀어 있다.
[함용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