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정대상 7단●안영길 초단
기사입력 1998년 03월 12일 14시 08분
제5보(87∼101)＝앞서 얘기했지만 속기파들은 대체로 `수재형' 내지 `천재형'에 속한다. 다시 말해 속기 기질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빨리 두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빨리 둔다. 수를 빨리 본다기 보단 수가 저절로 빨리 보인다. 그래서 더욱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한다.
그러나 그것이 장점일 때도 있지만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밀한 수읽기나 냉정한 형세판단에 의해 착수를 결정하기보단 눈에 띄는 감각적인 수에 너무 얽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단 마음이 앞서게 되고 더불어 `덜컥수'의 빈도도 그만큼 잦아지게 마련인 것.
그들이 그 타고난 기질에 비해 속기전에서 탁월한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흑 87 뻗음이 힘차다. 이 수로 인해 우하변 흑백간 공수의 처지가 뒤바뀌고 있다. 백 88로 끊어 보지만 흑 89에 백 90으로 보강해야 하니 흑 91로 오히려 흑만 두텁게 해준 꼴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앞서 언급한 예의 그 감각적 속기로 백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판을 그르치고 마는데 그 시발점이 92 치중.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눈에 띄는 급소다. 흑 93이 침착한 대응이며 여기서라도 백은 감각적인 행마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94, 96으로 여전히 감각에만 의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백 92∼96의 침입수는 무리수로서 패착과 다름 없다. 여기서는 보다 냉정한 형세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즉 [참고도]가 그것.
백 1로 일단 지켜놓고 흑의 태도를 묻는다. 이제 흑 2는 실전과 같은 침입수가 통렬히 들으므로 손빼기 힘들다. 그래놓고 백 3, 반상최대의 곳을 선점해 갔으면 백도 충분히 둘만했던 것인데….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