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사랑방] 월드컵팀 귀국장 '팬-기자들 무서워'
기사입력 1998년 03월 10일 15시 26분
◇…경칩도 지나고 따뜻한 햇살이 완연한 봄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만 축구계는 거꾸로 추운 겨울로 되돌아가는 것같습니다.
지난주 월드컵대표팀이 제4회 다이너스티컵에서 졸전을 펼쳐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이지요.
지난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해 한껏 고조시켰던 축구열기를 완전히 냉각시킨 꼴이 됐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표팀 이야기부터 풀어볼까요.
◇…월드컵축구팀에는 정말 악몽의 한주였지요.
`3．1절 한－일전' 패배로 한－일전 사상 첫 2연패를 당하면서 IMF로 인해 가뜩이나 웃음을 잃었던 국민들이 극도로 분노했고, 차범근 감독은 경질위기까지 몰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불과 3개월전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직행을 확정짓고 `월드컵 16강'꿈을 부풀리던 것과는 너무도 극명한 대조여서 그야말로 인기의 덧없음을 절감케 했지요.
◇…차범근 감독으로서도 45년의 일생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일전 패배로 촉발된 축구팬들의 분노는 중국과 홍콩전의 연이은 졸전으로 기름을 부은 격이 돼 그동안 숨죽여오던 반대파의 목소리까지 깡그리 수면 위로 올려놓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인신공격까지 난무하게 됐지요.
사태가 이렇게 되자 차범근 감독은 중국전 다음날인 지난 5일 입술이 터지고 반쪽이 된 얼굴로 다이너스티컵 취재기자들과 저녁식사를 겸한 면담을 자청해 마치 고해성사하듯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절절히 토해냈습니다.
차감독은 기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평소 언론에 대해 가져왔던 섭섭한 감정들도 솔직히 토로한 뒤, "모든 걸 툭 털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며 "앞으로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월드컵축구 대표선수들은 지난 8일 오후 김포공항 트랩을 내리면서 난생 처음으로 납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넥타이도 고쳐매고 거울이라도 한번 더 보며 `설레는 입국'을 준비했을텐데 이번에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먼저 나가기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에 일부 선수들은 "내가 앞장서서 계란세례를 받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지요. 하지만 막상 들어선 입국장에선 계란세례는 커녕 격려의 박수가 터져나와 가슴을 졸였던 선수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선수단의 귀국전까지 국내 언론사에는 "계란세례를 각오하라" "그냥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전화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실제 공항 분위기는 마치 입시에 실패한 자녀들을 맞이하듯 따뜻한 격려가 감돌아 성숙한 시민의식을 느끼게 했습니다.
◇…비행기 도착예정시간인 오후 3시50분에서 40여분이 지나도록 선수단이 나타나지 않자 입국장의 일부 팬들은 "혹시 볼 면목이 없어 다른 출구로 빠져나간 것 아니냐"며 수군거리기도 하더군요.
이날 공항에는 20여명의 취재진과 30여명의 팬들만이 찾아와 지난해 월드컵 최종예선 때와는 달리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래도 수원 삼성의 응원단 10여명은 고종수가 나타나자 "수고가 많았다"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3∼4명의 소녀팬들은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장대일에게 사인을 받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대표선수들의 날쌘 동작에 기자들은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특히 최용수 고종수 등 인터뷰의 표적이 되는 선수들이 도착직후 곧바로 택시를 타고 줄행랑을 놔 기자들이 모두 멍하니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같은 일은 전례가 드문 경우여서 이번 대회로 선수들이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실감케 했습니다.
◇…중국전서 동점골을 터뜨리는 등 이번 대회에서 2골을 넣은 최성용은 성실히 인터뷰 요청에 응하더군요.
최성용은 "성적이 부진하다보니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간의 마찰은 전혀 없었다"면서 "대표팀을 더욱 믿고 계속 격려를 보내주신다면 다음달 1일 한－일 정기전에서 반드시 승리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이쯤에서 대표팀 소식을 접고 프로축구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지요.
◇…안양 LG선수단이 12박13일동안의 일본 전지훈련을 마치고 10일 오전 귀국했지요. 훈련성과는 어땠나요.
◇…LG선수단이 훈련캠프를 차린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의 야마하리조트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풍광이 수려하고 리조트내에 있는 잔디구장의 시설도 훌륭해 전지훈련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선수들도 올해는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땀을 흘려 훈련의 성과가 극대화되었다고 봅니다.
◇…야마하리조트에 머무르는 동안 LG선수들은 다이너스티컵에 참가한 월드컵 축구대표팀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일본 TV를 통해 한국대표팀의 경기를 빠짐없이 지켜보며 나름대로 문제점과 대책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선수는 대표팀에 차출된 동료의 말을 인용해 "지난해 여름부터 대표팀내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간의 알력이 불거지기 시작했다"며 이번 다이너스티컵에서의 고전 원인을 `내분'에서 찾았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다이너스티컵에 참가한 한국팀의 경기가 끝날 때마다 국내의 분위기를 자세히 전하며 차범근 감독의 거취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일본의 한 스포츠신문은 한국이 지난 4일 중국전에서 2대1로 신승을 거두자 `차범근 감독의 수명이 연장됐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지난 7일 홍콩전（1대0 승）이 끝난 뒤에는 차감독의 퇴진을 점치는 신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감독이 다이너스티컵에 참가하는 동안 보다 신중한 행동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일본의 닛칸스포츠는 지난 8일자에서 차감독이 홍콩전을 끝낸 뒤,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한국 KBS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는 장면을 2면 톱 사진으로 큼지막하게 싣고 차감독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를 본 교포들은 "그런 식의 행동은 차감독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신을 추락시킬 수 있다"며 "대표팀 감독으로서 외국에 나오면 경기에 이기든 지든 신중한 행동을 해야할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전북은 중국 제남에서 친선경기 겸 전지훈렴을 하고 있다면서요.
◇…전북은 김정남 감독이 이끄는 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 루능타이샨과의 평가전（8일．태안）에서 한수위의 기량을 과시하며 완승을 거뒀습니다.
이날 스코어는 비록 2대1이었지만 내용은 전북이 7대3 정도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 아직은 양국의 수준차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축구열기 만큼은 깜짝 놀랄만큼 대단하더군요.
인구 50만명의 산동성 태안시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 무려 3만명이 입장해 열띤 응원을 펼쳐 높은 축구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붉은 악마'와 같이 유니폼을 통일해 착용하고 응원을 펼쳐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팀 경기도 아니고 일반 프로팀 평가전에 이처럼 관중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더군요.
지난 95년 창단때부터 전북의 살림을 맡아오고 있는 이강동 사무국장은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많은 관중앞에서 경기를 해본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라며 "한국도 빨리 프로축구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습니다.
◇…사실 전북은 이번 친선경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는데 이곳 중국은 그렇지 않더군요.
전북이 중국을 방문한다는 것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인구 8천700만명의 산동성은 물론, 중국 전역에 퍼지는 등 그야말로 대단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최고권력기관인 당에서 직접 사람이 파견돼 일을 챙겨주는가 하면 이동할때는 무소불위의 경찰（공안）에 의해 철저히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연일 이곳 기관장들로부터 칙사대접을 받는 등 그야말로 `왕노릇'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김정남 감독은 이번 평가전을 통해 잃은 것도 많았고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당초 김감독은 내심 `전북 정도면…'하고 불렀는데 완패를 당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이곳 중국사람들은 김감독을 영웅대접하며 유능한 한국 감독의 영입으로 전력이 크게 향상돼 당장 올시즌 우승을 거머쥘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김감독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그러나 김감독은 "자원에 한계가 있는데 단숨에 실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전북팀의 방문이 시즌을 앞둔 선수들에겐 큰 보탬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김감독은 "전북 정도의 실력이면 중국 프로축구를 평정할 것"이라고 호언을 해 아직은 한국과 중국의 축구수준차가 있음을 인정하더군요. [정리＝전용준 기자]
